한국인의 알코올 소비량은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 위스키의 나라 영국, 맥주의 나라 독일 등과 함께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많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2014년 기준으로 전세계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6.2ℓ인데 우리나라는 이 수치의 2배에 달하는 12.3ℓ를 마셨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괴로워서, 정치가 ‘개판’이라 짜증나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등 술을 많이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학적으로 한국인이 단맛과 감칠맛에 덜 민감하게끔 하는 유전자 변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한국인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오늘(14일)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연구팀(김정선 교수·최정화 박사)은 한국인 1829명(남 997명·여 832명)의 미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SNP) 유전체 정보와 음주 여부, 총 알코올 섭취량, 주요 선호 주류 종류, 주류별 섭취량의 상관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단맛과 감칠맛에 덜 민감하게끔 하는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과음할 위험이 1.5배 높았다고 밝혔다. 반면 쓴맛에 덜 민감한 유전자 변이는 음주 위험을 25%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미각수용체가 맛의 민감도 결정
미각수용체는 구강과 혀에 분포하는 신호전달 단백질의 하나다. 섭취한 식품이나 음료, 알코올 성분을 인식해 그 신호를 뇌로 보냄으로써 각 물질의 맛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미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SNP)가 개인별 맛에 대한 민감도를 결정하고, 이런 민감도의 차이는 식품, 음료 섭취 및 음주, 흡연 등과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과음하는 사람 단맛·감칠맛 수용체 유전자 많아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연구팀은 한국인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쓴맛을 매개하는 쓴맛수용체(TAS2R38, TAS2R5) 유전자의 변이는 음주 여부 및 총 알코올 섭취량과 상관성을 보였다. 특히 쓴맛에 덜 민감한 SNP(TAS2R38 AVI/* type)를 가진 사람들은 이 SNP가 없는 사람보다 음주자가 될 확률이 25% 낮았다.
이와 달리 단맛과 감칠맛 수용체 유전자(TAS1R)에 SNP가 있는 사람(TAS1R3 rs307355 CT 타입)은 상대적인 과음 위험도가 1.53배도에 달했으며, 특히 소주를 많이 마셨다.
◆ 미각수용체 염기따라 음주 유형 결정
연구팀은 미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각각의 SNP가 한국인 고유의 음주 유형 및 선호 주류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규명한 것으로, 기존 서양인 대상연구에서 보고된 것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즉 단맛, 쓴맛, 감칠맛 등의 복합적인 미각에 관련된 한국인 고유의 유전적 요인들이 다양한 주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최종 음주 형태가 결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디터 김준 june@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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