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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May 18. 2017

 [리뷰] 성적 쾌락 속 평등의 가능성

 '바람에 젖은 여자'

                                                                                                                                                                                                                                                                                                  

‘환생’ ‘돌아보지 마라’ ‘카나리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창적인 시선을 밝히며 능력치를 입증한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이 신작 ‘바람에 젖은 여자’를 선보인다. 일본 닛카츠 프로덕션이 선보이는 로망 포르노 리부트 시리즈(ROMAN PORNO: Reboot)로 성에 관한 색(色)다른 시선을 예고, 일찌감치 영화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람에 젖은 여자’는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게 예술이라면, 섹스를 맛있게 하는 것도 예술일까?”란 말을 서슴없이 건네는 여자 시오리(마미야 유키)와 “여자는 끊었어”라 말하는 무욕남 고스케(나가오카 타스쿠)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아찔한 밀고당기기를 벌이는 섹시 코미디다.


‣ 말이 아닌 육체의 대화...동등한 쾌락 공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에 젖은 여자’는 상당히 야하다. 1시간18분의 짧은 러닝타임동안에도 다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섹스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성적 자극은 꽤 깊은 메시지를 함축한다.


‘바람에 젖은 여자’의 초반부, 남녀의 모습은 명확히도 전도돼 있다. 어쩌면 성추행으로 보일만큼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시오리와 그런 그녀를 사정없이 내던지는 고스케의 행동은 뒤바뀐 가치관이 전하는 아이러니함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건넨다. 그런 고스케를 꾀기 위한 시오리의 태도 역시 남다르다. 그의 오두막에서 다른 남자와 서슴없이 섹스하고, 밤늦게 전화해 야릇한 신음소리를 건네곤 한다. 스스로를 “사랑의 사냥꾼”이라 밝히는 이 여인네의 발칙함은 재밌지만 일면 불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명확히도 이성을 배제한 채 육체적 교감만 원하는 시오리는 에로스에 빠진 삶이다. 이는 로고스의 가치에 거주하는 관객들에겐 불쾌할 수도 있다. 또한 '여성의 성 상품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관객들은 “깊게 생각하려면 철저히 혼자가 돼야해”라 역설하는 코스케의 태도에 더 공감된다. 하지만 ‘바람에 젖은 여자’가 건네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조금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의 대화는 위계적이다. 사실 ‘말’이라는 건 개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발화자와 수용자 사이에 위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발화자의 권위가 수용자의 태도를 결정하고, 불평등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성을 배제한 채, 오직 본능과 직관으로 행해지는 섹스의 쾌락은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가 가능하다. 실제로 ‘바람에 젖은 여자’ 속 섹스는 남성 강압적인 체위들보다, 여성 상위 체위를 주로 활용한다. 강압적 언어와는 또 다른 평등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코스케를 찾아 동경에서 내려온 연극 연출가 쿄코다. 연출가의 권위로 배우들에게 고압적 태도로 이래라저래라하던 그는 시오리와의 동성 섹스 이후 권위의 딱딱함에서 벗어나, 배우들과 과감히 섹스를 나누는 쾌락의 유쾌함에 빠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다소 민망하지만, 위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동등하게 즐거움을 공유하는 건 일면 흐뭇하다.





‣ 성적 쾌락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힘


1970~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로망 포르노가 사양길에 접어든 건 비디오의 보급과 함께 퍼진 AV(Adult Video) 때문이다. 스토리보단 오로지 성행위에 모든 감각이 집중된 AV는 팝콘 컬쳐로써, 단순한 자위 도구로써 꽤 널리 이용돼 왔다. 내용보단 배우의 외모와 기술로만 성공한 편한 방식의 영상 콘텐츠였다.


로망 포르노 역시 과거엔 AV와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2015년 리부트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많은 이들이 기대감과 동시에 의구심을 품었다. AV보다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다른 극 영화들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장르도 아니었기에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이 열린 로망 포르노는 예술적 가치는 물론, AV 못지않은 강렬한 자극을 전달한다. 이는 성적 쾌락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힘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바람에 젖은 여자’는 극장 밖에서 벌어질 수 없는 판타지를 디제시스의 세계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사족이 될 법한 이야기는 걷어내고, 초식남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플롯에 집중했다. 또한 사회적 시선에 의해 욕망을 감추고 살던 여성들의 로망 역시 톡톡히 건드린다. 최근 성 불평등에 관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람의 젖은 여자’가 전하는 평등성은 메시지의 감동보다, 성적 자극을 더 강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러닝타임 1시간18분. 청소년 관람불가. 25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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