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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Jul 08. 2017

[리뷰] 늙은 레이서의 위태로운 인생 레이스

 '카3: 새로운 도전'



디즈니‧픽사의 ‘명품’ 애니메이션 ‘카3: 새로운 도전’(감독 브라이언 피)이 2017년 여름 한국 극장가에 찾아온다. 전세계 누적 수익 12억 달러를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시리즈인 만큼, 신작에 대한 시네필들의 관심 또한 뜨겁다.             





레이싱 챔피언이자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라이트닝 맥퀸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한 차세대 라이벌 스톰에게 자신의 챔피언 위치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다 아직 레이싱의 꿈을 버릴 수 없던 맥퀸은 무리해서 속력을 올리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고, 결국 은퇴 직전의 위기 앞에 선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갈림길에 도달한다. ‘패배를 인정하고 은퇴’를 할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 레이싱에 참여’할지다. 완전히 변화한 시대에 그는 선택에 난항을 겪는다.


‘카’(2006)와 ‘카 2’(2011)와 비교해서 ‘카3: 새로운 도전’(이하 카3)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전작들은 자신의 날램을 과시하고 싶은 주인공이 패기와 혈기로 무작정 도전에 나섰다면, 이번 작품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더 이상 예전 같은 속력을 낼 수 없는 맥퀸의 도전기를 그린다. 이는 일반적으로 아동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채택하지 않는 스토리다. 오히려 어린 혈기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조금씩 늙어가는 어른의 이야기다.


어쩌면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토이스토리 3’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두 작품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안고 있지만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자각,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변화된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다 보고나면 ‘카3’는 이와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카3’ 속 맥퀸은 시종일관 위태롭다. 번개보다 빨랐던 맥퀸이 재기를 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감과 ‘이제 전설은 끝났다’고 외치는 후배들의 질주 가운데서 맥퀸은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스스로 눈을 감고 “나는 빠르다”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조금씩 느려지는 스피드는 자신을 향한 의심만 더욱 크게 한다. 여기서 그는 누군가들의 말처럼 ‘늙음은 죄’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딜레마를 깊이 파고들어 현실과 이상을 널뛴다. 비록 스크린에 비친 화면은 허구지만,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음직한 고민이 공감을 키운다.


그동안 ‘카’ 시리즈는 성장 스토리와 ‘자동차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속도감을 두 축으로 매력을 구성해왔다. 두 축이 교묘히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맛을 전달했지만, 굳이 한 가지 매력에 방점을 찍자면 속도감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맥퀸이 가장 먼저 골인 지점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와 화끈한 역전극이 관객들의 흥분을 키웠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카3’는 속도감보단 스토리 쪽으로 다소 무게를 옮겼다. 과거엔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맥퀸은 느려진 만큼 넓은 시야를 가진다. 그는 이제 앞은 물론, 뒤와 옆으로도 시선을 옮긴다. 그제서야 그는 1등 레이서일 땐 알지 못했던 다른 감정을 깨닫게 된다.


즉, 이번 영화는 질주가 아니라 기다림을 축으로 메시지를 꾸민다.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다가도 뒤처진 동료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출해 주기도 한다. 쾌감 대신 감동을 키우는 방식이다.


사실 레이서에게 기다림이란 패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레이서가 아닌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건 성숙을 의미한다. 트랙 위에서 승리는 오로지 기다리지 않는 한 명에게 주어지는 영예이지만, 트랙 밖에서 기다림은 ‘함께’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맥퀸이 함께 승리하고자 하는 인물은 바로 자신의 트레이너인 크루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인 레이서가 되지 못하고 트레이너가 된 자동차다. 맥퀸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뒤쳐져 버린 어른을 은유한다면, 크루즈는 경쟁이 두려워서 방향을 틀어버린 청년세대의 은유다. 옛 방식의 훈련을 고수하는 맥퀸과 현대식 훈련을 요구하는 크루즈의 면모 역시 어른과 청년의 대립각을 표현한다.


처음부터 으르렁거리던 둘이 ‘함께’가 되는 방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바로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도 레이서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울먹이는 크루즈와 “함께 가자”며 손(바퀴)을 내미는 맥퀸의 미소는 서로에게 가닿는다. 이로써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세대 화합이 스크린 속에서 이뤄진다.  


           



엔딩의 레이스 시퀀스. 맥퀸은 트랙 위 레이서로서 수 년 간 쌓아왔던 자신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출발라인에 선다. 파란 신호와 함께 빠른 속도로 치고나가는 그의 질주가 왠지 멀고 먼 완주 지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인생 레이스’처럼 여겨진다. 그 여정은 지금까지완 사뭇 다르다. 골라인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채 끌어안고 가는 즐거운 여행길과 같다. 결국 맥퀸은 진정한 ‘어른’이 된다.  


러닝타임 1시간49분. 전체 관람가. 13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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