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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ug 03. 2017

[인터뷰] '포크레인' 이주형 감독

 "반성의 시대, 우리는 모두 피해자"



아픈 역사의 이면을 맹렬히 파헤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영화 ‘포크레인’ 이주형 감독은 그 두려운 걸 묵묵히 시도한다.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조명한다. 포크레인처럼 느릿느릿하게, 그러나 우직하고 강하게 진실을 쓰다듬는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포크레인’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동원된 공수부대원 김강일(엄태웅)의 현재를 다룬다. 전역 후 포크레인 운전사로 살아가던 그가 20여년 전 그 날의 아픈 기억을 되짚어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를 담았다. 이주형 감독은 전작 ‘붉은 가족’에서 남북 분단 현실을 그린 데 이어, 또 한 번 날카로운 시선으로 역사를 비춘다.
 
사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다시 되돌아볼 때, 가해자나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가해자의 입장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자칫 변명을 해주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질 수도 있어 조심해야할 부분도 많다. 지금껏 가해자의 입장에서 5.18을 바라보는 영화는 많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포크레인’은 더 특별한 영화다.

“많은 분들이 분명 질타를 하실 거에요. ‘왜 나쁜X들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가?’라면서요. 그런데 사실 넓게 보면 그 군인들도 자유의지가 아니었거든요. 처음엔 빨갱이 잡으러 간다고 그랬는데, 나중에 5.18이 민주화 운동으로 밝혀지면서 ‘살인자’로 여겨지게 됐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아마 그 공수부대원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을텐데 한 번도 본적은 없어요. 감춰져 있는 거죠. 이게 우리나라의 숨겨진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의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비극적 역사의 가해와 피해 양 측면이 모두 명확히 밝혀져야 그 한이 풀리지 않을까 합니다.”


 



‘포크레인’ 속 강일은 포크레인을 타고 전국을 돌며 당시 상관들을 만나 “왜 우리를 그곳으로 보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가해자’ 공수부대원을 향한 변명과 위로로 볼 수도 있지만, 이주형 감독은 그들에게 위로가 아닌 ‘반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어찌됐건 그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명령을 따르기만 한 그들에게 무조건 질타만 하면, 더 큰 죄의식 속에 숨어버리게 될 것 같아요. 피해자-가해자를 싸움 붙일수록 진실은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화살을 조금 더 위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정권과 시대로요. ‘그래야만 했던’ 시대에 대해, 왜 우리가 아픔을 가져야 했는지 반성의 시대가 드디어 온 것 같습니다.”

이어 이 감독은 ‘시대의 아픔’에 대해 조금 말을 덧붙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 기억하시나요? 몇 년 전까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라고 돼 있었어요. 이 말을 듣고 자란 우리 모두 파시즘의 피해자인 거죠. ‘충성’해야만 하는 국가가 시키는대로 했는데 어느 순간 살인자가 돼버린 그들은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야 할까요. 지금 몸과 마음을 모두 국가에 바친 분들 다 힘들게 살고 계시잖아요. 참 위험한 문장을 몇 십년 동안 우린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포크레인’은 길을 떠나서 목적지를 찾는 로드무비의 서사를 따른다. 하지만 흔히 아늑한 목적지가 존재하는 일반적 로드무비와 달리, ‘포크레인’의 목적지는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강일은 계속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음으로써 스스로 자해해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끝내 모든 감정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해결되지 않을 거야’라는 비관적 태도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많이 어둡죠.(웃음) 사실 엔딩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모든 감정이 해소되는 해피엔딩 설정도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 문제가 아직은 해소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남아 있고, 풀어야할 과제들이 너무도 많으니까요. 진실규명이라던지,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벌이라던지요. 이 작품은 그냥 묻혀있던 과제를 표면으로 올린 거니까요. 이제 조금씩 해결과 이해하는 과정으로 가야겠죠?”

영화의 주요 장치로 활용된 포크레인은 관객들에게 의도한 메시지를 건네는 데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빠릿하게 지나가는 자동차 옆으로 느릿느릿 굴러가는 포크레인의 모습은 왠지 역사의 모습과 닮아보인다.

“길이라는 게 참 매력적인 공간이더라고요. 포크레인으로 그 길을 지나가면 도로에 상처가 나거든요. 그게 약간은 자학하는 자세로 보여졌어요. 그리고 약간은 탱크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영화는 이 포크레인처럼 땅속에 숨은 무언가를 파헤치고 들춰 끄집어 내려는 거에요. 관객 분들은 ‘과연 무엇을 꺼내고자 할까’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촬영하다보니까 포크레인이 그렇게 느린지 몰랐어요.(웃음) 처음에 보면서 정지화면인줄 알았다니까요.”


 



‘포크레인’이 깊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인만큼 주연 배우 선정에도 내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최근 커다란 이슈로 논란이 됐던 배우 엄태웅이 주연을 맡은 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이 감독은 “계속 거절하셨는데, 도저히 다른 사람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한 캐릭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구조다보니, 주연배우의 짐이 굉장히 컸을 거에요. 영화 감정이 잘 뽑힐 수 있었던 건 모두 엄태웅 배우 덕이지요. 현장 무게감과 집중력이 아주 뛰어난 배우에요. 심지어 영화 속에서 포크레인 모는 신은 100% 모두 엄태웅 배우가 직접 배워서 몰았어요. 포크레인 기사분들도 ‘자격증 딸 수 있겠다’ 하시더라고요. 정말 연습벌레 같았어요. 정말 이렇게 신뢰하고 영화 찍어본 적이 있나 싶었어요.”

분명 ‘포크레인’은 논쟁적 영화다. 최근 영화 '군함도'를 향한 네티즌의 설왕설래를 봤을 때, '포크레인'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이에 대해 이주형 감독은 “아무리 저예산 독립영화의 범주에 묶일지라도, 영화는 절대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고민과 불편함을 권유했다.

“‘포크레인’은 사회와 연관성이 있는 영화지요. 그래서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분들도 많을 거에요. 더구나 많은 관에서 하지 않아서, 힘들게 찾아와 보시는 분들은 가볍게 보시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영화 속 그의 아픔과 상처를 조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가해자-피해자의 다툼이 아니라 그들의 내상에 집중하다보면 우리 모두의 아픔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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