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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ug 28. 2017

[인터뷰] '택시운전사' 제작자 박은경

 “촛불시민이 다 영웅이었듯...”



‘택시운전사’가 1100만에 터치다운하기 전날, 서울 강남구 소재 쇼박스 사무실에서 제작자인 박은경(45) 더 램프 대표를 만났다. ‘동창생’ ‘쓰리 썸머 나잇’ ‘해어화’ ‘리셋’을 제작한 더 램프는 5번째 영화로 천만 허들을 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통해 국민과 공명을 이뤄낸 천만영화 산파는 행복함과 담담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 1100만 돌파가 눈앞이다. 소감이 어떤가.

▲ 송강호 선배가 자신의 ‘변호인’ 기록(2013년·누적 관객수 1137만5438명)을 경신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감사하다는 느낌뿐이다. 감정의 부피가 진짜 큰데 여전히 실감나질 않는다.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택시운전사’에 대해선 자식 같은 느낌이 들더라. 낳아서 떠나보낸 뒤 사람들이 좋아해서 쓰다듬어주는 걸 바라보며 “잘 크고 있구나” 고맙고 안도하는 심정이다.
 
- 앞서 ‘광주’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다. 이번에 많은 관객이 ‘택시운전사’에 큰 지지를 보내주는 이유를 무엇이라 여기나.

▲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또 광주 이야기 하려고?”란 소리들을 들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앞의 영화들과 다른 시선이다. 기존 작품들의 경우 광주에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택시운전사’는 독일에서 일본을 거쳐 입국한 기자,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광주를 보는 이야기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과 선택에 포커스를 맞추고 동력으로 삼았다. 광주를 소재로 했으나 그날의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래서 제목도 ‘택시운전사’였다. 향후에도 다른 시선으로 광주 관련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하늘이 내려준다는 천만 돌파를 했을 때 뭘 했었나?

▲ 자정을 넘겨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숫자가 찍혔을 때 스태프들한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아서 뭔가 해야 할 거 같아서 남편, 고2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 등 가족과 함께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각자 스케줄이 많아서 보통은 같이 밥을 잘 안 먹는 편이다. 축하의 말보다는 “고기가 맛있다”는 말을 들었다.(웃음)


 

 

- 쇼박스 마케팅 팀장으로 일할 때도 천만영화 경험을 했을 텐데 그때와 어떻게 다른가.

▲ 첫 업무가 ‘태극기 휘날리며’(2004)였다. 1년 동안 열심히 매달렸던 영화가 천만이 넘었을 때 내가 직접 제작한 영화처럼 너무 좋았고, ‘괴물’(2006) 때도 그랬다. 제작자 입장에선 처음이라 실감이 잘 나지 않을뿐더러 그때와는 분명 다르다.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좋아함이 있다.
 
- 이전 정부 시절인 2014년, 폭발력 있는 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정했을 때 심리적 부담은 없었나. 자체검열이라든가.

▲ 기획·제작단계에서 민감하게 여기진 않았다. 우려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잘 하자에 집중했다. 영화를 시작했을 때 광화문 촛불집회를, 정권교체를, 5.18 진상 재규명을 위한 특조위 등을 예상했겠나. 환경이 도와준 것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다.
 
- 실화에 영화적 상상을 덧댄 이 영화의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 2009년 쇼박스 근무 시절, 동티모르에서 찍고 있던 ‘맨발의 꿈’ 촬영장을 찾았다가 괴한이 침입해 모두들 무작정 도망가 민가에 숨었는데 그곳에 있던 한 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굉장히 민망했었다.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정말 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함께 일하던 PD를 통해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김사복씨의 신문기사를 접한 뒤 그 당시 기억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은 작지만 큰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천만 질주의 두 주역 장훈 감독과 송강호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 장훈 감독은 워낙 열심히 하시고 좋은 시선을 가지고 계셔서 편하고 즐겁게 작업했다. 송강호 선배는 시나리오 속 보수적인 아저씨 느낌이었던 만섭을 사랑스러운 인물로 만들어줬다. 또한 자신의 캐릭터뿐 아니라 폭넓은 고민이 몸에 배어 있는 배우다. 어느 날, 촬영 현장에서 밥을 먹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어서 케노피를 쳤다. 순간 의자를 보더니 “모자라겠다”라고 하더라. 막내 스태프들이 비를 맞을까봐 걱정해서였다. “제작자인 난 뭐야”(웃음)...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분이다.
 
- 배경이 1980년이다 보니 촬영의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시대물을 다루는 모든 영화의 어려움이다. 찍을 장소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 영화는 차와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 흘러가는 배경이 중요했다. 택시로 달렸을 때 단층건물, 전봇대가 보여야만 했기에 장소 헌팅을 많이 했다. 의성, 마산, 속초 등 온갖 군데에서 그 시대 향기가 남아있는 곳을 섭렵했다. 이번에 안 가봤던 지역을 굉장히 많이 방문하게 됐다. 가끔 블로그에 “우리 동네 찾아내셨더라고요”란 글이 올라와 웃음을 짓곤 한다.
 
-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와 ‘택시운전사’를 함께 관람해 화제가 됐다.

▲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인 1987년 5월 부산 가톨릭회관에서 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 힌츠페터 기자가 5.18 광주 상황을 촬영한 필름을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을 부산지역 최초로 상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주도했다고 한다. 그런 인연이 있기에 만나시면 좋겠다고 생각해 청와대 담당자에게 전하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고 “영화를 보시면 어떻겠느냐”는 역제안을 해왔다. 감사한 일이었다.


 

 

- 제작자로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는 어떤 건가.

▲ ‘택시운전사’를 진행하면서 기존에 구상하던 아이템들을 많이 정리했다. 내가 오롯이 잘하고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제작이란 게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엔 자신이 없다. 반면 이 이야기, 인물은 아는 거 같은 '편안한' 작품들에 댕긴다. ‘택시운전사’도 한 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식과의 약속보다 다른 가치를 선택하는 수도 있는데, 이런 아버지들이 우리 사회를 만들어주신 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진행하다보니 근간이 되는 게 생기더라. 중간에 많은 부분이 바뀌더라도 내가 이 작품을 시작하도록 만든 ‘하고 싶어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고민하게 하고, 견지하도록 강제한다.
 
- '해어화’ ‘택시운전사’ 그리고 조선어학회의 국어사전 제작 이야기인 차기작 ‘말모이’(가제) 등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있고 일반인의 시선에서 영화를 만드는 거에 관심이 많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만 영웅이 있나, 다들 영웅이지 뭐”란 마음이다. 촛불시민들이 다 영웅이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영웅이 살고 있다. ‘택시운전사’도 어떤 부분은 선택, 약속의 이야기다. 우리는 하루하루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사는지, 특별한 상황에서 난 어떤 선택을 할지를 묻는 작품이었듯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맞는 선택을 고민하는 이야기에 끌린다. 또 제작사 이름(더 램프)처럼 세상을 조금이라도 비출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서강대 국문과 졸업 후 제일기획 AE로 근무하다 IBM에서 영업을 뛰었다는 이력이 이채롭다.

▲ IBM 마케터로 입사 후 영업사원으로 돌아 3년간 영업을 했다. 문과 출신이다 보니 첨단 제품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힘들었다. 대신 너무 많은 걸 배웠다. 물건을 파는 거는 엄청나게 정직한 일이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내 뜻이 좋다고 항상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니까. 이후 영화 일을 하고,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소중한 경험을 그 시기에 체득했다. 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살았는데 2002년 쇼박스에서 마케팅 팀장을 뽑는다고 해서 이력서 내고 면접 보고 입사하게 됐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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