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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ug 31. 2017

[리뷰] 물음표 끌고 가는 스릴러 쾌감

 '살인자의 기억법'



‘세븐 데이즈’ ‘용의자’ 원신연 감독이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극장가에 컴백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범이라는 파격 소재의 원작에 원신연 감독 특유의 연출력, 배우 설경구의 내공까지 얹어 숨 막히는 긴장을 흩뿌린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과거 연쇄 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설경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병수는 우연한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남자 태주(김남길)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한다. 그러다 태주가 병수의 딸 은희(김설현) 곁을 맴돌기 시작하면서 병수는 필사적으로 그를 쫓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자꾸 살아나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 현실과 망상, 의심의 끈 놓을 수 없는 서사


‘살인자의 기억법’은 과거의 죄책감에 내몰린 노인의 눈으로 거리낌 없이 죄를 저지르는 청년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그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의 기억은 신뢰할 수 없고, 그런 병수가 바라보는 태주의 정체 또한 계속 의문을 남긴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모든 서사 역시 망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대부분 스릴러 영화의 쾌감은 물음표에서 나온다. ‘누가 범인일까?’ ‘비밀은 무엇일까?’ 등등 관객들 머리에 새겨지는 물음표가 짙어질수록 느낌표의 통쾌함은 배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맛있는 스릴러다. 단 한 순간도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모든 의심의 중심에 서있는 병수는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과거의 살인 습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병수의 ‘부성’에 대해 심정적 공감을 건네는 건 자명하다. 더불어 힘없는 노인의 발버둥에 측은함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병수 스스로도 ‘태주가 아니라 내가 죽인 걸 수도 있다’며 자신을 의심할수록 공감은 의심으로 물든다.
 

‣ 원작의 매력 놓치지 않은 영화화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 먼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원신연 감독의 말처럼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의 매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영화라는 매체에 꼭 어울리는 작품이다.

소설을 영화화한 많은 영화들이 장편 소설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면서 서사가 뚝뚝 끊기는 등 많은 아쉬움을 남겨왔다. 그러나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그런 약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원작의 1인칭 시점을 차용해 병수를 중심으로 극을 끌고나가면서 ‘살인범’이지만 대부분 관객들의 공감과 몰입을 이끄는 점, 영화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난해한 서사 역시 흐름을 끊지 않고 유려하게 연출해낸 것도 강점이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새로 추가한 캐릭터 병만(오달수)이 극 후반부에 다소 전형적으로 활용된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 영화 업그레이드 ‘설경구의 품격’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는 알츠하이머 환자, 아버지, 살인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 캐릭터를 모두 갖고 있다. 전혀 다른 면모를 하나로 꿰어내는 데에는 배우 설경구의 힘이 작동한다. 영화 곳곳에 켜켜이 쌓인 물음표를 더욱 농도 짙게 표현해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며 벌어지는 에피소드에선 웃음을 유발하다가, 피 냄새를 맡았을 때는 관객들에게 섬찟함을 느끼게끔 만드는 능력은 명불허전이다. 이처럼 여러을 오가며 겪는 혼돈을 순간적인 눈빛변화만으로 완벽하게 포착해내는 능력은 ‘설경구’라는 브랜드 가치를 증명한다.

 
러닝타임 1시간58분. 15세 관람가. 9월7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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