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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Sep 09. 2017

[인터뷰] 에이프릴 뮬렌 "'빌로우 허'

여성이 바라보는 용감한 사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캐롤’의 뒤를 잇는 매혹적인 퀴어무비가 올 가을 한국 관객을 찾는다. 여성의 섬세한 시선을 앞세워 제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빌로우 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는 21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에이프릴 뮬렌 감독과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캐나다 출신인 감독은 다수의 영화, 드라마에서 배우활동을 이어오다 2014년 코미디영화 ‘락, 페이퍼, 시저스: 더 웨이 오브 더 토서’로 연출 데뷔를 했다. 이후 ‘데드 비포 던’ ‘88: 살인자의 기억법’ 등 코미디와 액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빌로우 허’를 통해 처음으로 사랑이야기에 도전한 뮬렌 감독은 “여성의 시선으로 사랑, 욕망, 친밀감, 섹스 그리고 이별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그녀의 말처럼 영화는 지붕 수리공인 레즈비언 달라스(에리카 린더)와 패션지 에디터인 이성애자 재스민(내털리 크릴), 두 여성의 사랑을 소묘하며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Q. 오는 21일 한국에서 드디어 개봉한다. 관객들을 만나는 소감이 궁금하다.


A. 나를 비롯한 모든 ‘빌로우 허’ 스태프들은 한국에서 개봉하는 것에 대해 흥분돼 있다. 한국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좀 더 자신에 감정에 솔직해지고 용감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오래된 관념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 대해 또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사랑에 대한 인식에 있어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Q. 다가가는 달라스와 고민하는 재스민, 영화 속 관계의 밀당이 익숙한 듯 낯설다. 남녀 사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는 분명 다르다. 이 감정적 묘사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가.


A. 당신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길 원하는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의 몸이 마음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짜릿한 반응은 대부분 통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라스와 재스민은 모두 익숙한 생활 패턴과 습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에서 뛰쳐나와 새 삶을 살 용기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을 그들 서로를 믿고 시작하게 된다. 


Q. 언뜻 영화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감정적으로는 다르지 않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A. 이 영화의 강한 메시지는 ‘사랑’이다. 이것은 범우주적인 테마다. 사랑은 성별, 나이, 종교, 심지어 사회적 지위와도 상관이 없다. 영화 안에는 ‘자유’라는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은 그들이 누구든 상관없이 서로 그 자체를 허락해 주고,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재스민이 편안하고 정형화되어 있는 삶에서 뛰쳐나와 진정한 사랑을 믿기 시작하는 부분을 굉장히 좋아한다. 인생에 있어 굉장히 큰 리스크지만 평생 동안 못 찾을지 모르는 최고의 상대를 만나게 해준다. 사랑은 굉장히 멋지고, 위험하고, 모든 것을 포함하며, 설명할 수 없고, 절대 끝나지 않는 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때로는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사람에게 감정이 전해지기도 한다.             





Q. ‘빌로우 허’의 베드신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스토리만으로도 강렬한데, 베드신까지 강렬하게 연출한 이유는 무엇일까?


A. ‘빌로우 허’는 끌어당김의 법칙(the law of attraction)을 체험하는 영화다. 당신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바랄 때, 육체는 처음 그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는 수단이다. 영화 속에서 그 육체적 표현을 억제하고 싶지 않았다. 대담하고 구속이 없는 솔직하고 진정한 사랑에 처음 빠졌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달라스와 재스민의 연결은 육체의 대화로써 보여진다. 이것은 육체적인 여정이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연결이 오히려 더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Q.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했다. 쉽지 않은 연기를 펼친 나탈리 크릴, 에리카 린더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을 것 같다.


A. 우리는 달라스 역할로 진실하고 자연스럽고 독특하며,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단번에 사로잡는, 기백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한 마디로 엄청나게 멋진 사람을 찾아 다녔었다. 에리카 린더는 이러한 자질을 모두 다 가지고 있었고, 달라스를 영화세계로 데려오는데 필요한 덕목이었다. 달라스와 비교했을 때, 재스민은 아주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놀라울 정도로 영향을 받기 쉬우며, 강한 충동을 느낄 때, 마음가는 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탈리 크릴은 이러한 재스민의 캐릭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고, 재스민의 캐릭터에 우리가 찾던 순수미를 불어 넣어주었다. 


Q. 전작에서 액션을 찍었던 감독의 변신도 인상적이다. ‘빌로우 허’도 역시나 육체적(?)인 영화인데, 액션영화 연출 경험이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A. 모든 작품은 기본적으로 다 다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조명, 프로덕션 디자인, 연기의 톤 등 감독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일정하게 있는 거 같다. 내가 감독했던 모든 영화나 티비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은 다음 작품에도 계속 남아있는 열정의 조각들이다. 물론 그것들은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는다. 창작에 대한 노력은 항상 작품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그 과정을 통해 언제나 배우면서 성숙해진다는 점에서 언제나 큰 임팩트를 준다. 


Q. 현장의 스태프들을 모두 여성으로 채웠다고 들었다. 결과물만 봐도 훌륭한 작업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편견일 수 있지만, 남성이 다수인 현장과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A. 원래 의도는 ‘관객들이 전에는 한 번도 영화에서 보지 못한 것을 실현시켜 보자’라는 것이었다. 사랑, 욕망, 친밀감, 섹스 그리고 이별을 경험하는 것을 여성의 관점에서 솔직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목표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눈을 통한 두 캐릭터 사이의 강렬한 화학작용의 짜릿한 순간들을 잡아내서 스크린에 옮기는 것이었다.


‘빌로우 허’는 특히 모든 스태프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목적에 어울리는 영화였다. 각 파트를 여성으로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서 우리는 결국 모든 필요한 자리에 여성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영화에 충분히 담기 위해 모든 영화부서와 자리에 여성스태프를 고용했다. 이 결정은 원래 우리 목표와 충분히 근접하게 도와주었다.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의 각자 역할을 해냈다.             





Q. 여성의 시선이 왜 이 작품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


A. 여성들의 솔직한 목소리, 솔직한 욕구 그리고 오르가즘조차도, 많은 미디어에서 거의 표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창조적인 방법으로 여성의 강한 점, 여성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것 등 우리 여성들을 전부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영화에서, 티브이에서 또는 각종 언론에서의 섹스에 대한 표현의 99%는 남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었다. 그래서 내 안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을 보다 실제적으로 표현하고자 굉장히 노력했다. 여자로써 나를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내 자신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나를 성적으로 흥분시키고, 또 무엇이 나를 다른 사람과 육체적인 관계로 이어지게 하는 가에 대해 그대로 영화 안에 옮기려고 노력했다. 


Q. 어느 곳이든 영화 촬영장에는 남성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여성 스태프들의 노고로 탄생한 ‘빌로우 허’가 영화계에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는가?


A. 영화계에서 여성의 비율이 적게 차지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거보다, 우리는 ‘빌로우 허’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낫겠다. 나는 모두가 다 여성 스태프인 것이 영화로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각자의 어마어마한 열정과 용기가 포함된 순수한 감성이 일종의 동업자정신으로 변했다.


개개인의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파트 전체의 가장 중요한 창작물로 만들어졌고, 두 주인공 나탈리 크릴과 에리카 린더를 위한 보호환경이 세트장 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세트장에서 여성스태프들은 모두 그들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고, 그것은 영화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진실해졌다. 


Q. ‘빌로우 허’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A. 난 우리가 영화를 통해 성취한 것이 자랑스럽다. 영화 내에 모든 프레임에서 여성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태프들도 영화를 완성했다는 것 자체보다 자신이 일정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해했다. 여성스태프들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결과물에 대해 우리가 선례를 남기는데 일조했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를 바란다. 요직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함께 축하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후세대가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Q. 한국에서는 아직 많은 관객들에게 퀴어영화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한국 관객들에게 한 마디 전하자면?


A.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이다. 범우주적인 그 무언가다. 우리 자신이 나이가 얼마나 되든, 어떤 문화권에 있든, 성별이 어떻든, 종교가 어떻든 간에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언가 말이다. 이 사랑이라는 콘셉트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는 감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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