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터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글리스트 Sep 10. 2017

[인터뷰] 이나라 작가, 韓·佛 덕후부부 탐방기

‘풍경의 감각’



신간 ‘풍경의 감각’(미래의창 펴냄)은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의 도시 탐방기다. 오브제는 그들이 나고 자란 파리 그리고 서울이다. 1부엔 남편, 2부엔 아내의 글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이나라(44) 작가를 9월의 문턱, 동교동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카페처럼 자그마한 체구의 작가 프로필이 궁금했다. 대학에서 사회학,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96년 유럽으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200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2010년 티에리 베제쿠르와 결혼했다. 2013년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이론 박사를 취득했다.


프랑스 상원의회 입법사무관으로 근무 중인 남편은 이듬해 회사를 휴직하고 아내의 고향 서울에서 1년간 체류했다. 앞서 2007년 3주간 서울을 첫 방문했던 남편은 이후 거의 매해 서울, 경기도 등 한국을 탐색해왔다. 이 작가는 현재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대학에서 현대영화이론, 미장센, 현대 미학이론, 프랑스미학을 강의하며 짬을 내 영화·문화 글을 기고하고 있다.


두 나라로 차곡차곡 스며든 이방인들의 시선에서 기술된 ‘풍경의 감각’은 장소의 이야기이자 장소를 자신의 존재와 결부시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뻔하지 않은 여행서로서도, 무겁지 않은 인문학서로서도 반짝인다.


“원래는 2015년부터 동일한 제목으로 한겨레21에 연재를 했어요. 그해 겨울, 출판사에서 연재물을 보고 출간을 제안해왔고요. 시각문화·미학연구가 제 연구주제이긴 하지만 파리의 골목길 풍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회역사적 배경에 대해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눠왔고요. 응용통계와 법률을 전공한 남편은 건축·인문예술 덕후에 가까워요. 파리엔 건축·미술 마니아들이 워낙 많거든요. 같이 걸어 다니면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책을 읽기도 했고요. 그래서 출판사에 남편과 같이 해보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남편과 목차를 짜고 블로그에 연재했던 프랑스어 글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대폭 손질했다. 서울에 대한 남편의 이야기는 프랑스 독자를 대상으로 했던 거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이 작가 역시 주간지 연재 글들의 분량이 짧아 보강을 하고, 파리 이야기를 추가로 삽입하느라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낭만 도시 파리에 대한 시선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그간의 고정관념을 날카롭게 깨트리는가 하면,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에 지적 욕구가 충족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파리에 대해 로맨틱하고 아름답단 얘기들을 하죠.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면이 있지만 굉장히 거만한 도시예요.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많아서 그렇죠. 그들은 관광객에게 신경 쓰질 않아요. 오히려 시골에 가면 여유로운 삶의 태도와 이방인에 대한 신기함 때문에 친절하죠. 또 도시공간으로서 파리는 19세기에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방식으로 계획되어진 도시예요. 이성적인 구조물이라 살갑게 느껴지진 않죠. 오래 지켜보고 경험해야 정이 들고 감정이 생기지 싶어요. 한편으론 내가 도시공간과 경쟁하는 거란 생각도 해요. 기죽어서도 안 되고, 내 멋대로 상상해서도 안 되고...잘 대화해야 하죠.”


도시 혹은 공간과의 대화,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나 짧은 기간 방문하는 관광객 모두의 귓전을 잡아끄는 대목이다.             





“나의 기분, 감정, 꿈을 장소에 일방적으로 투영하는 건 장소에 내 감정을 강요하는 거와 같아요. 파리에 대한 판타지로 ‘파리는 이래야 해’라고 정해놓은 뒤 상상했던 것과 다르면 화내고 실망하고, 반대로 억지로 감동하는 것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명성과 이야기에 굴복하는 게 아닐까요?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곳과 얽힌 이야기, 역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경험하고, 나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돌아와서 기억해보는 과정이 중요한 듯해요.”


그런 측면에서 파리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공간이다. 작가는 거듭 강조한다. 쉽게 속상해하지도, 실망하지도, 감탄하지도 말라고.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게 분명한 사람들은 그런데 실망하진 않는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맞춰본다. 더불어 훔치려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요즘 관광객들은 예전과 달리 현지인처럼 체험해보고 싶어들 하는데 한편으론 시간과 체험을 훔치는 일이에요. 그건 그곳에 오래 살아왔던 사람들의 시간과 경험 속에서만 체험 가능한 거잖아요. 그들이 만들어온 것들을 훔치려들지 않는, 현지인을 존중하는 게 여행자들의 중요한 윤리인 듯해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고 대화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남의 집에 불쑥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드는 거라든가 유럽에서 벌어지는 반관광객 시위가 벌어지는 현상, 제주 이효리 자택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행위의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세계 유명 도시의 경우 SNS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이 ‘부익부 빈익빈’ 형태를 보이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다행히 파리는 가볼 곳이 많고, 파리시의 노력 덕에 분산효과가 발생해 그런 피로감은 덜한 편이다.             





“도시는 작은데 몇몇 군데만 사람들이 몰리면 관광객이 도시를 먹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곤 하죠. 파리는 아직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파리사람들이 새침하긴 하나 무관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유도 클 거예요. 더불어 관광객이 온 역사도 오래 됐고, 인프라도 구축돼 있어서 다행스럽죠.”


국내 출판가에 프랑스와 파리를 다룬 책은 여행서, 에세이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기대와 판타지도 크고 비판도 많다는 증거일 터다. 작가가 생각하는 ‘풍경의 감각’은 숱한 책들 속에서 어떤 향기를 뿜기를 바랄까.


“파리뿐만 아니라 서울에 대한 책이기도 한데 정치나 큰 이야기, 잡담이나 연애담과 다른 방식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공간은 자신을 비추는 것이기도 하니까 나를 둘러싼 공간과 도시에 시선을 돌려보고 탐색하는 기회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상대의 도시를 읽는 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방식이라고 여겨요. 우리가 공부를 하고 영화·공연·전시를 보는 것도 나 자신과 타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타인의 영혼을 통해 자아를 확대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 에이프릴 뮬렌 "'빌로우 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