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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Oct 25. 2017

[인터뷰] '서편제' 이자람

 "송화의 외로움, 이제 알겠어요"



캐릭터와 전혀 다른 배우들을 꽤 많이 봐 왔지만, 인터뷰로 만난 이자람은 특히나 의외였다. 어린시절부터 소리를 벗삼아 자란 명창 송화와,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꾼인 이자람이 꽤 닮아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말대로 뮤지컬 '서편제'와 2010년 초연부터 함께해온 이자람은 송화 그 자체다. 그러나 송화의 처절한 소리보단, 이자람에게선 여유롭고 따스한 기운이 풍겨왔다.             


 



뮤지컬 '서편제'는 송화, 동호 남매가 아버지 유봉과 갈등을 빚으며 각자의 예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관객을 웃고 울리는 폭넓은 감정연기에, 온몸을 울리는 판소리까지, 송화 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한정적이다. 이자람은 2010년, 2012년, 2014년에 이어 올해로 네 번째 '서편제'를 공연 중이다. 


"연출님 말씀으로는, '서편제'를 올릴 때 (차)지연, 자람의 의사를 체크하는 게 가장 먼저래요. 저야 얼마든지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제게 '서편제'는 평소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시간이에요. 늘 노는 바운더리를 넘어, 다른 곳으로 외출한다는 느낌으로 임하게 돼요. '이 호화롭고 넓은 남의 집에서 난 뭘 하는 거지' 주눅도 들면서, 재미도 느끼죠."


주눅이 든다니 의외의 표현이다. 이자람의 독보적인 소리에 팬들은 '자람신'이란 애칭을 붙여줬다. 하지만 이자람 본인은 매번 무대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매번 너무 생경해요. 전 긴 회차를 안 해봐서 그런지, 다른 분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안 지치지, 어쩜 저렇게 잘 하지' 생각해요."


매번 무대가 새롭듯, 4연째 공연 역시 이전과 또다르다. 이자람이 꼽는 이번 '서편제'의 포인트는 동호의 이야기가 잘 정리됐다는 점과, 세 배우가 빚어내는 꽉 찬 호흡이다. 


"4연 중에서 '동호'의 이야기가 가장 잘 정리됐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이)소연이의 공연을 2층에서 한 번 봤는데, 세 명의 캐릭터가 찰랑찰랑하니, 그 누구도 구멍나지 않고 무대가 잘 찬다는 느낌을 받았죠."         


    



소문난 소리꾼 이자람이지만, 송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송화의 인간적인 면에는 더욱 몰입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3연때까지는 제 자신이 절대 송화와는 닮지 않았고 닮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저 송화가 아픈 일들을 당하고 소리를 찾는다는 것을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소리꾼 이전에, 삶을 버티는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더 가깝게 느껴져요.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주변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버틸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왜 그렇게 지지고 볶고들 살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임종 때 혼자 있기가 싫어서 그러는구나'란 생각이 요즘 들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송화를 보니 정말 혼자더라고요. 평생을 외롭고 고생하며 살았어요. 그런 측면에서 '서편제'를 통해 위로받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이 변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이자람은 최근의 '안식년'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동편제 적벽가' 이수자, 최연소 '춘향가' 완창,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등 창작판소리 작품까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자람이지만 지난해 12월부터 8개월 동안은 판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판소리를 11살 때부터 쉬지 않고 26년간 해 왔는데… 이렇게 쉰 적은 처음이에요. '서편제' 연습으로 다시 시작했는데, 목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제 목인데 낯선 상대가 된 거죠. 창작 작업도 올해는 안식년을 갖는단 생각으로 멈춘 상태예요.


(Q. '번아웃'이 온 건가요?) 올까봐 그랬던 것 같아요. 아는 언니가 작년 11월에 보낸 '잘 지내냐'는 메시지를 최근에야 보게 됐어요. '그때 난 죽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고 답했죠. 그러니 '어떤 죽음? 음악적? 철학적? 정치적?'이냐고 묻더군요. 생각해보니 전 음악이나 창작욕구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일종의 정치적 죽음을 선택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전 가을바람이나 봄바람에 설레지 않을까봐 늘 두렵거든요. 그것이야말로 생이 흑백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인 것 같아서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어… 제가 너무 이상한 얘기를 하는 건 아닌가요.(웃음)"             





소리를 안 하는 동안엔 맥북을 사고, 음악 프로그램 '로직'을 배웠다. 평소 보지 않던 KBS 2TV '1박 2일', tvN '신서유기' 같은 예능을 잔뜩 봤다. 이자람은 "놀 줄 모르는데 노는 걸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그런 줄 몰랐는데, 예능이 그렇게 재밌었다"고 했다. 


소리꾼, '아마도이자람밴드' 멤버, 뮤지컬배우, 국악감독…. 이자람에 대한 수식어는 제법 여럿이다. '안식년' 소식은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겼지만, 그의 활동은 계속된다. 이번 '서편제'엔 배우뿐 아니라 국악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한'은 없어도,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픈 욕망은 여전하다. 


"저는 장인이나 명창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야망이 너무 없는 걸 수도 있는데, 욕망만 있으면 됐지 야망은 인생에 없어도 되는 것 같아요. 그저 삶이 즐겁고, 뭔가를 늘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정말 아주 작은 것이라도요. 그게 빵 한 조각이더라도."


이자람·차지연·이소연(송화 역)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서편제'는 11월 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사진=라운드테이블(지선미)


에디터 오소영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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