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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Oct 28. 2017

[인터뷰] ‘유리정원’ 문근영

 “아프고 나니 더 편해졌다”



배우 문근영(31)이 영화 ‘사도’ 이후 2년만에 스크린에 귀환한다. 한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접고 치료에 전념한 문근영은 화제작 ‘유리정원’(25일 개봉)으로 다시금 관객들의 마음에 노크를 한다. 순수와 광기, 그 사이에 놓인 묘령의 여인 재연 캐릭터로 ‘국민 여동생’ 타이틀이 또 한 번 흐릿해졌다. 영화 개봉 하루 전인 24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문근영을 만나 영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영화로는 오랜만의 주연작이다. 스크린에 복귀하자마자 출연 작품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니 기쁠 만도 하다. 국내 여성 감독 최초로 칸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한 성과다.


“어떤 작품에 참여해서 선보이고, 또 그걸로 인한 만남이 생겨날 때 발생하는 긴장감이나 부담감은 사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극이든 늘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근데 ‘유리정원’만큼은 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청받으니까 정말 뿌듯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칸이요? 사실 조금 기대하기는 했는데…(웃음). 아쉬워요. 죄송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하고요. 신수원 감독님은 이미 칸에 다녀오셨을 만큼 유능하신 분인데, 이번엔 내가 부족해서 못 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유리정원’은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문근영)이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과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후, 어릴적 살았던 숲 속의 유리정원 안으로 숨어 들어간 이야기를 그린다. 배신의 상처와 왜곡된 욕망, 집착으로 일그러진 삶을 사는 재연을 연기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


“제일 많이 생각한 건 이거예요. 재연은 왜 상처를 받았을까? 단순히 사랑의 배신이나 연구를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전부터 계속 상처를 받아온 인물인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온전히 줬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들로부터 더욱 상처를 받은 게 아닐까요? 왜 재연이 그런 길을 걷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칼날이 나한테 향해질 때 생겨나는 생존본능 같은 거죠.”            


  



영화에는 재연의 삶을 난도질하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정교수(서태화)와 지훈(김태훈)이다. 정교수는 랩의 존망을 걱정하느라 연인이던 재연을 배신하고, 지훈은 베스트셀러 집필을 위해 재연의 삶을 훔친다. 연기를 하면서 어떤 캐릭터가 더 순수하지 않았던 것 같냐고 묻자, 문근영은 아주 당연하게 ‘지훈’을 꼽았다.


“사실 재연 입장에선 더 큰 상처를 준 사람은 정교수일 거예요. 정교수한테는 마음을 줬기 때문에 돌아오는 게 온전히 상처였던 거고, 반면 지훈한테는 계속 방어적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무덤덤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교수의 의도는 지훈과 달리 명확했어요. 지훈은 재연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고, 소설로 쓰고, 실망하고, 또 충격을 받는 모든 행동들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제 기준일 수 있지만요.”


촬영 이후 ‘유리정원’을 처음 본 건 기술 시사에서 처음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위축돼 있었지만, 오히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기술 시사 때는 제가 못한 것들만 더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더 마음 쓰이고 죄송하고 속상했던 시간이 잠깐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좀 편해요. 언론 시사를 보신 분들이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심각하고 나쁘게만 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욕을 안 먹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고요. 이제 25일부터 극장에서 대중들이 이 영화를 만나게 될 텐데,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해요.”


영화는 숲을 주 배경으로 진행된다. 생동감 넘치는 초록빛 향연이 펼쳐지는 숲은 한 폭의 그림 같아 안구정화를 해준다. 하지만 여름날의 숲이라면, 현장 분위기는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숲에서의 촬영이 어땠냐고 질문했더니, “정말 좋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생각보다 많이 덥지도 않았고, 벌레도 많지 않았어요. 불편한 점이라면 화장실이 좀 멀어서(웃음) 많이 참거나 눈치껏 왔다 갔다 했죠. 숲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숲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받았어요. 저는 항상 힐링 받고 싶으면 바다로 갔는데, 숲에서 추억을 많이 쌓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바다는 강원도 쪽을 자주 가요. 격정적인 겨울 바다를 좋아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가는 것 같아요.”             





올 초 연극 공연 중 혈관과 신경 압박으로 통증이 생기는 급성구획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후 4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이어오며 예기치 못하게 활동을 잠깐 쉬었다. 하지만 복귀를 할 때쯤 되니 오히려 이전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다.


“아플 때 후회가 들더라고요. 그동안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너무나도 사소한 이유로 포기하고 접었고 일들이 마구 생각났어요. 좀만 관심을 기울이고 했었어도 좋았을 텐데… 낫고 나면 그런 일들을 하나씩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앞으로도 사소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여유롭게 누릴 거 다 누려가며 살아가려고요.”


12년 전 영화 ‘댄서의 순정’ 이후로 춤을 계속 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에, 지금은 안 춘지 오래됐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하고, 관절 같은 게 더는 예전 같지 않아서…(웃음).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댄서의 순정’을 출연하기 전까지는 춤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배워보니까 몸으로 감정과 리듬을 표현하는 게 정말 재밌었죠. 춤이라는 게 좋은 표현의 수단 같아요. 움직임 같은 게 몸에 배어 있으니까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판타지 장르 자체가 국내 극장가에서 대단한 흥행 성적을 거두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흥행 소재인지를 굳이 따지고 참여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다. 문근영에게 위안을 주는 요소는 다른 쪽에 존재한다.


“흥행이 잘 안 될 때 속은 상하긴 하지만 막 상처를 받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아쉬운 건, 내가 연기를 하면서 느낀 걸 많이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죠. 흥행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상황의 분위기도 있고, 그때그때 대중들의 취향도 다르니까요. 영화가 공개되는 순간 작품은 아예 제 손을 떠나는 거니까, 돌아오는 결과 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흥행과 상관없이 제게 위안을 주는 건, 내가 좋은 작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행복이에요.”  


사진 = 올댓시네마


에디터 이유나  misskendrick@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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