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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Nov 26. 2017

‘그알’ 국정원 정치호 변호사,

자살인가 정치적 타살인가



적폐청산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치호 변호사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정조준했다.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로 검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다가 지난달 30일 밤 9시8분께 인적 드문 소양강댐 입구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소속 고 정치호 변호사 사망 사건을 다뤘다.


그는 지난 2013년 국정원 TF 현안과 관련해 거짓 사무실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이 차 안에 피운 번개탄으로 인한 일상화탄소 중독이었지만 유서 한 장 발견되지 않은데다 가족과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친형인 정양호씨는 "마치 그냥 잠깐 바람 쐬러 가는 복장으로 나갔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것부터가 이상하다"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가족들은 시신 발견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한다. 정치호씨의 아버지는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물으니까 치호하고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것이다. 그 직원이 ‘119에 신고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경찰보다 국정원이 고인의 죽음을 먼저 파악했다는 얘기다.


정치호 변호사는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주변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양한 정치공작 관여 의혹을 산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인 10월26일부터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주변 동료들에게 "(그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뒤집어쓸 것 같다"며 극도의 불안감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시신이 발견된 날은 검찰의 2차 수사가 예정돼 있었다. 가족은 정치호씨가 알고 있던 국정원의 비밀 때문에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족들은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 배후엔 국정원이 있다는 입장이다.


2012년 12월11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 댓글 조작 정황이 포착됐다. 사실상 국정원의 대선개입이었던 댓글 사건을 검찰은 다음해인 2013년에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비해 그해 4월 국정원에는 가짜 사무실을 만드는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를 주도한 건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과 당시 감찰실장이었던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이 함께 만든 국정원 내 현안실무 TF팀이었다.


정치호씨는 사법당국의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현안 TF팀에 소속돼 있었다. 오랜 기간 국정원을 취재해온 기자는 정치호씨가 이번 수사에서 부담을 가질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했다. 사망 직전 원주에서 고인을 만났던 친구는 "뭔가 불안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회사 쪽에 안좋은 일이 생겼고, 나한테 안 좋은 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증언했다.


사망 직전 바다에 투신하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 데 대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살 행동이 아니라 도피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족들은 정치호씨를 쫓던 누군가가 그가 의식을 잃게 만든 뒤 번개탄을 피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월30일 오후 5시경, 경찰이 정치호 변호사를 발견하기 4시간 전 현장을 지나갔다는 목격자는 정 변호사의 차량과 함께 처음 본 차량 3대가 주차장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오기 전 의문의 사람들이 먼저 현장에 왔다는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강릉을 벗어나기 전 정치호 변호사가 한 주유소에 들렀을 때 주유소에 머무르는 내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뒷 상황을 확인했다.             





국정원 법률보좌관 출신 김 모 검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통화에서 "법률보좌관실, 그다음에 파견 검사 등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쪽으로 책임을 떠넘긴다고 치호가 그렇게 얘기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정 변호사가 느낀 불안의 원인은 2013년 국정원 내 만들어진 비밀 조직에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재판에서 한참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던 그때 당시 국정원 안에서는 현안·실무 TF팀이 은밀하게 꾸려졌다.


현안·실무 TF의 유일한 목적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 방어였다. 공판 기간 동안 실무 TF 팀원들은 증인으로 채택된 국정원 직원들과 위증을 준비하고, 증인 신문 리허설까지 맞춰보며 잘 짜인 연극을 만들고 있었다. 검찰 측의 중요한 증인이었던 국정원 직원들이 돌연 진술을 번복하면서 "기억 상실증 재판"이라는 오명까지 얻어야 했던 원세훈 재판, 위증과 거짓이 난무하는 이 공판의 한 편에는 당시 실무 TF의 팀원으로 일했던 정치호 변호사가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사망 장소에서 발견된 정 변호사의 2G 휴대전화를 입수해 포렌식한 결과 사망 전 변창훈 검사와 24분간 통화한 내역을 포착됐다. 변 검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를 은폐하려 한 혐의로 지난 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직전 투신 자살했다.


변 검사와 정 변호사 모두 현안 TF 팀 소속이었다. 앞서 제작진과 통화한 김 모 검사는 “변 검사가 정 변호사를 회유, 협박하려던 게 아니라 헛된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내가 부탁해서 통화를 한 거다”라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국정원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고인들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에디터 김혜진  agent@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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