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0만 km 똥차가 사랑을 싣고 달릴 때

잠을 포기하고 주문진으로 달려간 이유

by 살라킴

독자들에게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오늘 이야기할 장면은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에 있었던 진짜 두 번째 만남을 내 기억의 편집실에서 과감하게 통편집하기로 했다. 너무 짧고 정신없이 지나가서, 우리 사이의 감정이 쌓일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 마음대로 정한 우리의 '공식적인 두 번째 데이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진 속 내가 초록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시멘트 회사에 쓰레기를 운반하는 '25톤 워킹카'를 운전하고 있었다. 하루 12시간씩 4일을 꼬박 일하고 이틀을 쉬는 고된 스케줄이었다. 낮밤이 바뀌는 교대 근무는 사람을 늘 몽롱하게 만들었고, 그날 역시 아침 근무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저녁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잠과 사투를 벌이던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띵동-]
택배 도착 알림 문자였다.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주문해 둔 목걸이가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문자를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피로가 싹 가셨다. 지금 당장 이 목걸이를 그녀 목에 걸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대신, '서프라이즈'를 택했다.
​"나 잠시 너 보러 갈게."
​나는 충북 제천에, 그녀는 강원도 주문진에서 동생네 부부와 조카를 돌보며 지내고 있었다. 편도 1시간 30분 거리. 왕복 3시간이면 쪽잠 잘 시간을 전부 길바닥에 쏟아야 했지만 계산기 따위는 두드리지 않았다.
​당시 내 애마는 10년 묵은 i40였다. 주행거리 20만 km를 훌쩍 넘긴, 누가 봐도 '똥차'였다. 하지만 그날 그 차는 나에게 그 어떤 슈퍼카보다 빨랐다. 나는 액셀을 밟으며 제천에서 주문진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고, 졸음은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주문진 그녀의 집 앞.
도착했다는 연락을 하고 차 안에서 기다리는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룸미러로 뒤를 수십 번도 더 확인했을 것이다. 씻지도 못하고 달려온 터라 급하게 챙이 넓은 초록색 모자를 푹 눌러썼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그녀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차 안 가득 그녀의 익숙한 향수 냄새가 퍼지는 순간, 긴장이 탁 풀리며 웃음이 났다.
나는 준비한 목걸이를 건네며, 서툰 영어와 손짓으로 말했다.
​"나 오늘 저녁에 다시 일하러 가야 해. 잠도 안 자고 이거 주려고 달려왔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번역기를 통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목걸이, 나에게 아주 특별한 목걸이가 될 거야. 평생 풀지 않을게."
​그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 밤새 운전하고, 또다시 밤을 새워 일해야 하는 하루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의 목에서 반짝이는 목걸이와 나를 바라보는 행복한 눈빛. 그거면 충분했다.
​사진 속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초록색 모자를 쓴 내 어깨에 그녀가 기대어 있다.
우리가 진짜 연인이 된 건, 아마도 이날이 아니었을까. 20만 km를 뛴 낡은 차가 사랑을 싣고 달렸던, 나의 무모하고도 아름다웠던 두 번째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