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과 언어를 넘어 가족이 된 영상 통화의 기록
가끔은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움직이는 날이 있다. 나의 세 번째 주문진행이 그랬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왜'라는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특별한 기념일도, 꼭 전달해야 할 물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여자가 내 아내가 될 거라는 강한 믿음, 혹은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신비한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안달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로코의 문화는 엄격하다. 정식으로 약혼하기 전까지는 데이트는커녕 사소한 애정행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손 한 번 잡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사이.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고,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땅에서 온 그녀는 나를 다시 20대 청년처럼 설레게 만들었다.
설렘 반, 신비함 반을 안고 도착한 주문진. 우리는 대단한 곳에 가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밤바다 위를 그저 나란히 걸었을 뿐이다. 거창한 대화는 필요 없었다. 짧은 만남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려온 나의 진심을 알아서일까. 그녀는 따뜻한 눈빛만으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그때였다.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에는 멀리 모로코에 있는 그녀의 동생 '사라'가 있었다. 그녀는 큰 마음을 먹은 듯 동생에게 나를 소개했다.
"내가 결혼할 사람이야."
화면 너머의 사라는 나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가족처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리고 어설픈 한국말로 나를 불렀다.
"오빠!"
주문진의 차가운 밤바다 공기 속으로, 멀리 모로코에서 건너온 따뜻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한마디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여동생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오빠'라는 그 짧은 단어가 주는 책임감과 따스함이 파도 소리와 섞여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안착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영상 통화 속 사라의 환한 미소는 우리 사이의 국경과 거리를 단숨에 지워버렸다. 이유 없이 달려간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 낯선 땅에서 온 이들이 이제 나의 가장 소중한 울타리가 될 것임을.
시원한 밤바람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던 그날, 주문진의 밤바다는 그렇게 우리의 '가족사' 첫 페이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