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롯데리아 문이 열리고, 나의 세상은 뒤집혔다

모로코 장인·장모님과의 생애 가장 떨렸던 첫 대면

by 살라킴

네 번째 만남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특별하고도 묵직한 기억으로 내 가슴속에 박혀 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희미해졌지만, 그날의 긴장감만큼은 지금도 손끝에 닿을 듯 선명하다.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날은 그녀의 부모님이 머나먼 모로코에서 한국 땅을 밟으시고, 내가 정식으로 그분들 앞에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1남 3녀 중 첫째 딸이었다. 한국에 먼저 정착해 가정을 이룬 **셋째 동생 '아말'**이 부모님을 초청했고, 영상 통화로 먼저 수줍은 인사를 나눴던 둘째 '사라'는 고향 모로코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만남은 단순한 상견례를 넘어, 한 집안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오래된 숙제인 ‘마흔 살 장녀의 인생’을 마주하는 엄숙하고도 비장한 자리였다.
​사실 그녀가 이 땅에 올 수 있었던 건 아말 부부의 눈물겨운 헌신 덕분이었다. 비자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모로코에서 언니를 위해 기꺼이 보증인이 되어준 동생. 내가 처음 아말을 만났을 때 그녀의 뱃속에 있던 작은 생명이 어느덧 자라 두 발로 씩씩하게 걷는 것을 볼 때면, 그 경이로운 시간만큼 우리를 맺어준 가족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새삼 소름 끼치도록 감사할 따름이다. 그녀는 늘 말했다. 아말 부부와 그 시댁 식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의 인연은 시작조차 못 했을 거라고.
​나에게 그녀는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순수한 사람이었다. 때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같다가도, 때론 세상을 다 품어줄 엄마처럼 든든했다. 요즘은 그때의 순수함보다는 조금 사나운(?) 모습도 더 자주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눈엔 그저 지켜줘야 할 아기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부모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 진심을 다해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타국으로 떠난 큰딸이 혹여 홀대받지는 않을까, 짝을 찾지 못해 평생 외롭게 살지는 않을까 밤잠을 설쳤을 부모님의 마음속 커다란 돌덩이를 이제는 내가 대신 치워드리고 싶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한국이나 모로코나 똑같을 것이기에, 나는 그분들이 마음 편히 고향으로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약속 당일, 충북 제천에서 강원도 주문진으로 향하기 전 나는 미리 주문해 둔 과일 바구니를 찾으러 갔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돈도 없고 앞날도 막막했던, 그야말로 인생의 ‘쭈굴이’ 시절이었다. 남들처럼 번듯한 명품 가방이나 보석 하나 준비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못내 미안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이 바구니 하나에 내 남은 인생의 모든 운명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과일 가게 사장님의 손을 붙들고 간절하게 매달렸다.
​“사장님, 저 오늘 진짜 장가가야 되거든요... 제발 잘 좀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더 신경 써주세요.”
​내 절박한 눈빛이 사장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 평소보다 훨씬 정성스럽게 채워진 묵직한 바구니를 건네받는데, 마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훈장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뒷좌석에 과일 바구니를 상전 모시듯 귀하게 실어두고 달리는 길, 20만 km를 훌쩍 넘긴 낡은 똥차 안은 터질 듯한 긴장감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첫 약속 장소는 주문진 바닷가의 한 카페였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도착해 그들을 기다렸다. 단 1분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혹시라도 늦어 실례를 범할까 봐 조급했던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막상 카페 앞에 서니 심장이 미친 듯이 나대기 시작했다. 입술은 바짝바짝 마르고, 손바닥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서 있을 수가 없어 나는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떡하냐, 나 진짜 죽을 것 같다. 너무 떨려서 숨이 안 쉬어져."
​수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20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20년처럼 길게 느껴질 때쯤, 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차에서 내린 아말의 남편은 먼 길을 달려와 긴장한 내 기색을 읽었는지, 저녁 식사부터 하자며 롯데리아로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나를 배려해 준 그 따뜻한 마음씨에 감사하며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롯데리아 문을 열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듯한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한눈에도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외국인 가족들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직감을 느꼈다. '아, 저분들이 내 미래의 장인, 장모님이구나.'
​특히 올해 일흔이 되시는 장인어른의 풍채는 압도적이었다. 흰 곱슬머리와 흰 수염, 그리고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서슬 퍼런 눈빛! 처음 마주했을 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그 강렬한 눈빛 뒤로 피어오르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는 순간,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은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아, 이분은 정말 깊고 따뜻하고 멋진 분이구나.' 정갈하게 히잡을 쓰신 장모님의 신비롭고 경건한 모습 또한, 한국의 산골 마을에서만 자라온 나에게는 잊지 못할 경건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대화는 단어 하나하나가 국경을 넘고 언어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아말의 남편이 영어로, 다시 아말이 부모님께 아랍어로 전달하는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 하지만 나는 그 느린 대화의 틈새마다 내 온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의 딸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아끼는지, 이 복잡한 언어의 다리를 건너 그분들의 영혼에 닿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롯데리아의 노란 조명 아래서, 나는 이방인이 아닌 한 가족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었던 그 하루는, 그렇게 나의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의 문턱으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