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살래요 ?
잡지사 편집장과 작가의 유쾌한 동거 일기.
공동저자가 번갈아 에세이식으로 동거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와 생각을 적은 책이며 문장은 맛깔나고 유쾌해서 재미있게 읽힌다.
지금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독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흙 수저와 삼포세대 운운하며 운명적 환경 때문에 결혼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 적령기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독신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페미니스트들한테 돌 맞을지도 모르지만 예전에는 이런 단어가 있었다. 명절날 우리의 안위와 결혼을 걱정해주시면서, 당사자의 기분과 표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결혼 계획을 물어보시는 어르신들이 말하는 20대 중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젊은 남녀를 지칭했다.
아내와 결혼할 때인 20세기 말만 해도 결혼 적령기가 되면 다른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정상인(?)의 삶이라고 대부분 생각했었다. 마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고 쳐서 퇴학당하지 않은 이상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되었으며, “나는 독신으로 살 거야” 같은 외침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었다.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 따위의 구호가 판을 치던 시대였고,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지금처럼 빈부 격차가 심하지도 않았고, 대학 진학률도 높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고등어를 구우면 옆 집에는 꽁치를 구웠지 소고기 등심을 먹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앞집이나 옆집, 뒷집 모두 그저 그런 생활수준으로 살아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뿌리 깊은 사회적 통념에 대해 반항적 행동이나 의문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았고, 지금처럼 개개인의 목소리가 크고 은하계의 별들보다 많은 수많은 주장들이 SNS를 타고 와글와글 퍼지는 시대가 아니었다. 20대에 탈모가 시작되었건, 외모가 특정 동물을 닮았건, 집살 돈이 있건 없건, 직장이 있건 없건, 가방끈이 길건 짧건.. 어찌 됐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했었다.
결혼을 안 하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은 이미 결혼했거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관습으로 받아들였던 다수에 의해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되곤 했다. 가족을 부양할 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거나, 육체적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주변의 결혼생활이 트라우마가 돼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예술 쪽 직업을 가져서 성과 삶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소수만이 독신으로 산다는 사회적 선입견이 아주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결혼했을 때와 비교해 보니 15세 이상 성인의 일반 혼인율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반으로 격감했으며 평균 초혼연령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 1997년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29세, 여자 26세였다.
평균인 젊은(!) 나는 평균의 신부들보다 몇 개월 나이 든 아내를 만나 결혼 적령기에 결혼했다.
지금 결혼식을 올리는 젊은이들의 평균 나이는 남자 33세, 여자 31세로 예전 같으면 노총각 노처녀로 치부되던 그들이 가장 많은 청첩장을 뿌리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총 24만 건의 혼인신고가 있었는데 남녀 모두 초혼인 부부는 77%, 나머지 23%는 둘 다 재혼 이거나 둘 중 한 명은 재혼이었다.
특이하게도 남자는 재혼, 여자는 초혼인 경우가 9천8백 건이었는데 반해 남자는 초혼이고 여자는 재혼인 경우가 1만 5천 건으로 50%나 많았다. 연상인 여자와 결혼한 경우도 17.5 %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갑인 부부도 16%나 된다. 이런 숫자들이 여성의 지위향상 및 사회생활 증가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런 머리 아픈 내용은 <나만 보는 독서일기>에 부합되지도 않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려고 한다.
외국인 과의 결혼도 눈에 띄게 증가해서 열 커플 중 한 쌍은 외국인과의 결혼이다.
웅녀의 자식들이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결혼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에서 결혼을 안 하거나, 아니면 결혼을 했으나 다시 싱글이 된 사람, 편 부모, 미혼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가구와 가족 형태가 생기고, 전체 가구 중 일인가구가 사분의 일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결혼에 대한 통계 숫자와 상관없이 독신의 삶을 서로 공유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변화되고 있는 새로운 가정과 동거에 대한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 둘이 의기투합해 공동 소유로 집을 사고 삶을 공유한다. 주택값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으며 1인 가구라 하더라도 밤이 되면 자야 한다. 반 지하나 옥탑방이던, 고시원이나 오피스텔이던, 여유 있는 부모님에게서 증여나 상속받은 아파트던.. 지친 몸을 쉬게 할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둘은 각자의 전세 보증금을 합치고, 약간의 대출을 얻어 아파트를 사고 동거를 시작한다.
현명한 결정이다.
둘 중 하나가 한밤중에 갑자기 쓰러지더라도 남은 한 명이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동거인끼리 취미, 자라온 환경, 가치관, 심지어 음식이나 술에 대한 취향이 비슷하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동거라고 볼 수 있다. 서로에게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환상적인 궁합으로 시작된 동거지만 연애와 결혼생활이 다른 것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 간격이 벌어진다. 저자 두 명이 살면서 취미, 음주, 식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지만 때로는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던 작은 에피소드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아내와 남편이 사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은 정리정돈과 집안 정리를 잘하고, 다른 동거인은 그가 지나갔다는 존재의 증거를 사방에 남기고 다니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설거지는 싫어한다. 다행히 동거인은 음식 만들기보다는 뒷정리를 잘한다. 완벽한 커플처럼 보이지만 일상은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작은 일로 충돌하고 서로 싸우고 화해하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져 간다.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이 세월이 지나면서 잘 익은 장아찌처럼 숙성돼 정으로 변하는 것처럼 동성 간의 동거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공간을 공유한 우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 대한 연민과 정으로 다시 채색된다.
아무리 영혼의 친구라 해도 매일 좁은 공간과 개인생활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은 번잡하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오래 알고 지냈고 사이좋던 친구들이 여행을 가서 대판 싸우고,
며칠만 안 봐도 보고 싶고, 차 마시고 헤어지자마자 전화를 해대던 닭살커플도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관계로 변할 수 있다.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완충적인 거리가 필요하다. 연인이나 배우자, 동거인에게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해 24만 쌍이 결혼을 하고 반대로 11만 쌍이 이혼한다. 평균적인 혼인 지속시간은 16년.
20년 넘게 함께 살았던 부부들이 가장 많이 이혼하고 있으며, 이혼한 부부 열 쌍 중 두 쌍은 결혼 한지 4년도 안된 부부들이다.
친구와의 결별도 큰 아픔이 될 수 있지만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과정은 복잡한 법적 절차와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사회적 편견을 버텨내야 한다. 때로는 정신적으로 깊은 상실감과 상처를 입기도 한다.
더 이상 과거의 시야로 결혼 안 하는 세대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도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 둘의 동거가 오래도록 유지돼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심 없고, 싱글의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인간들과 1인 가구주들에게 새로운 가정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정표가 되기를 응원해 본다.
< 자료 참조 : 2019년 혼인 이혼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