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게 이르시되
책 제목의 Rush는 "급히 움직이다". "서두르다"이다.
무엇을 서둘러 하라는 말인가?
오전 8시 30분, 강남구청역에 도착한 지하철은 김밥 옆구리 터지듯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낸다. 뛰쳐나간 그들은 환승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Rush 다!”
워낙 환승하는 사람들이 많고, 기다리는 플랫폼이 좁아서 달리지 않으면 다음 열차가 아니라 다 다음 열차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분이라도 더 자려고 아침마다 침대에서 뭉개는 직장인들에게 이런 달리기는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다니기 싫은 이유 중 하나로 아침저녁 지옥철을 순위로 꼽는데 아마도 이런 위험한 달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통화를 하는 몇몇 노인들을 제외하고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경직돼 보인다. 특히 월요일 아침에 살펴보면 그들의 얼굴은 전쟁에 나가는 병사처럼 결연하기까지 하다.
”문만 열려봐 내가 일등 먹는다!”.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실수로 발이라도 밟았다가는 싸대기라도 후려칠 태세다.
단무지처럼 얼굴이 노랗게 변해 문에서 튕겨 나온 몇 명은 벤치에 앉아 긴 머리를 떨구고 있다. 마치 불륜의 현장에서 머리채를 잡힌 여자처럼 옷은 구겨지고, 예쁘게 빗고 나온 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이 좁은 땅에 인구의 반이 살고 있으니 지하철뿐 아니라 어디를 가나 한가하고 조용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저 다들 바쁘고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어디론가 쉴 새 없이 급히 움직인다.
"Rush 다!”
이 책은 Why you need and love the rat race라는 제목으로 2011년 출간되었고 한글 번역본은 2012년에 출판되었다. 힐링캠프 같은 TV 프로그램이나 긍정심리학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정신적인 여유와 행복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힐링이 그 시대의 화두였다. 저자는 도발적으로 이런 시대적 유행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경쟁과 각박한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삶으로 돌아가자는 행복 주의자, 마틴 셀리그만 같은 사람들을 비판한다.
타인, 다른 집단, 다른 사회와 경쟁하며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런 사회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행복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렵생활을 그리워하고 경쟁과 발전을 거부한다면 문명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필연적인 적자생존을 피할 수 없다면 행복을 핑계로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변화와 경쟁의 물결에 올라 타라는 것이다.
즉, 살기가 느껴지는 지하철에 남들을 밀치고 과감하게 뛰어들라고 소리친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순대 속의 당면처럼 눌려 있다가 문이 열리면 튀어나오는 삶 속에서 ‘과연 사는 게 뭘까?’ 하는 한가로운 개똥철학을 외치지 말라는 것이다.
의학과 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통해 불과 100년 만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급격히 연장되었고, 굶주림과 수많은 자연재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안락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 불씨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경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심리학, 생물학, 진화론,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경쟁을 통해 발달한 문명과 과학이 인간에게 얼마나 풍요함을 선사했는지 설명한다. 다분히 일리가 있다. 늘 그렇듯이 평범한 주장이라도 소위 말하는 식자의 입이나 글을 통해 전달되면 대부분 진실처럼 보인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다양한 문헌과 논문, 많은 책을 참고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참고자료의 목록을 덧붙이게 되면 동조자를 얻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벤자민 디즈 데일리가 말했듯이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거짓말" "나쁜 거짓말 " 그리고 "통계".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되는 자료와 통계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발표되는 고용률은 같은데 한쪽에서는 전보다 나아졌다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과거보다 악화되었다고 떠든다. 관점에 따라 숫자를 왜곡해서 해석하는 이런 일들을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본다. 그러나 이렇게 숫자 하나하나를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면 가뜩이나 신경 쓸 것 많은데 세상살이가 더없이 피곤해진다. 나 보다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의 주장이니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의 두통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수명 연장이나 의료의 발전이 행복의 향상에 기여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백신의 발명으로 신생아 및 유아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새로운 약과 의료기의 도움으로 과거에 치명적이었던 질병에 걸리더라도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고 수명도 연장되었다. 불과 100여 년 전.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은 35세였고 지금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는다. 살아갈 날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수명 연장이 행복으로 이어질까?
우리가 접하는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고령인 분들은 대부분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관절이나 척추가 좋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많이 있다. 젊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100세까지 일하면서 살 수 있다면 유토피아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의료보험이나 연금의 고갈을 걱정하고, 세대 간 갈등, 독거 빈곤 노인의 증가는 해마다 상승하는 노인 자살률로 증명된다. 심지어 고령인구 열명 중 한 명이 치매환자가 될 수 있다는 암울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나의 노후에 대해서 공포심이 들기도 한다.
책에서 소개한 대로 미국 역시 다른 선진국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은 편이고 마약이나 우울증 때문에 해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고 한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뭔가 다른 센 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의 책에서 비판하는 에덴 주의자들이 나뭇잎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살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급진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치열하게 살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행복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런 삶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발전과 문명의 진보를 빙자해 날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상품들. 더 크고 비싼 자동차, 넓고 호화로운 집, 신상 핸드폰과 80인치 TV, 과소비를 조장하는 광고와 미디어에 현혹돼 우리의 지갑을 터는 그 수많은 물건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달렸다고 생각했고 달리느라 숨소리는 거칠지만 얼마 오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문뜩 허망해지고 한없는 피로가 몰려오면서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행복이란 뭐지? “ ”인간은 왜 살아야 하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고자 새 애인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빨간 스포츠카를 사고, 어떤 자는 다 버리고 떠나기도 한다. 나처럼 떠나지 못한 자들은 힐링캠프를 보면서 긍정심리학 책을 봤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힐링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쥐들의 달리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때로는 왔던 길을 돌아보면서 잠시 머뭇거리더라도 다시 힘내서 달려야 한다.
그것이 에덴에서 추방된 “남자 사람” 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창세기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