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쓴 딸의 교환학생 체험기
인천공항 출국장.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돌아오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으로 늘 붐비던 공항은 코로나로 텅 비어 있었다. ‘이 시국에 꼭 나가야 하나?’ 속내를 감추고 아무 말 못 한 채 서로 머뭇거리다 침묵을 깬 건 아이의 한 마디. “이젠 들어가야 해”.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에는 꽃게가 가슴에 품은 알에게 말을 건 낸다.
꽃게가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아이의 한마디에 불이 꺼진 것 같았다. 쏟아지는 간장처럼 결코 녹록지 않고 신산한 인생을 향해 한발 다가서는 딸에게 도착해서 보라고 편지를 내밀었다.
딸내미 보아라.
군대 가는 아들을 보내고 허전해하는 부모를 보면 이해가 안 됐다. 성인 남자고, 혼자만 가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모두 가야 하는 의무며 수시로 휴가 나오고 겨우 십팔 개월 버티면 되는데 뭐 저리 야단인가 생각했단다.
아빠는 아들이 없어서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기는구나. 집이건 밖에서 건 세발자전거 같은 우리 가족이 일 년 동안 엄마 아빠 두 바퀴만 한국에 남고 바퀴 하나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니 한동안 넘어지지 않게 중심 잡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일은 설레면서도 두렵단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한단다. 특히 혼자서 먹고, 자고, 막힌 변기를 뚫을 생각을 하면 암담할 거야. ^^
한국에서는 엄마 아빠가 도와주고 같이 디저트 먹으며 수다 떨 친구들이 있지만 거기선 네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야 하니 힘든 일 보다 귀찮은 일이 더 많을지도 몰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의무가 늘어나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걸 의미하지만 봄이 오면 어느새 가을이 오듯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렴.
혼자서도 잘하리라 믿는다. 우린 마틴 루터 킹 과 넬슨 만델라와 같은 INFJ라는 걸 기억하렴~.
끝으로. 아빠의 당부는 다음과 같다.
건강이 최고다. 귀찮더라도 꾸준히 운동하고 굶지 말아라.
일요일에는 교회 가서 예배에 참석해라.
미루지 말고 자주 청소해라. 특히 화장실은 일주일만 안 하면 곰팡이가 생기니 물기가 없도록 자주 닦고 환기시켜라.
삼 개월에 한 번은 이불도 빨아야 한다. 베개는 커버를 벗겨 한 달에 한 번은 세탁해라.
화장실이 막히면 대책이 없으니 가자마자 변기 뚫는 걸 사서 화장실에 둬라.
남을 너무 의심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친절도 경계해라.
그럼 건강히 잘 다녀오고 너의 견문과 체력이 떠나기 전 보다 훨씬 성장해서 다시 만나리라
아빠는 믿는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 아이가 보이지 않자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늘한 저녁 햇살이 내려앉은 빈 방에는 아이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고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이 화장실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두고 간 물건은 없는지 텅 빈 옷장과 서랍장을 열어보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아내는 흐린 눈동자로 별로 볼 것도 없는 창문 너머를 멍하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