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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Mar 02. 2023

교환학생 출국 후 / 봄과 여름

아빠가 쓴 딸의 교환학생 체험기

정착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잠이든 아내는 다음날부터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독일 시간으로 정각 열 시면 딸이 받는 문자 “영통?”은 매일 울리는 알람이 되어 엄마와 딸을 연결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점수를 매기면 세상의 모든 엄마가 높은 점수차로 아빠를 따돌릴 것이다.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눴으며 산고의 고통을 견디고 낳은 분신이기 때문이다. 딸은 아들과 달리 때론 엄마의 친구가 되기도 하니 영상통화가 아내에겐 딸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위안이 되었다.


딸은 도착해서 학생보험에 가입하고 핸드폰을 개통한 후 이불과 베개, 접시와 양념 같은 주방살림을 장만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독일 내에서도 손꼽히는 도시라고 들었는데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며 무엇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해 살기 좋지만 비가 자주 오고 늘 흐려 햇빛 보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선 노란 개나리가 환하게 꽃을 피운 봄날, 날씨 때문인지 우울하고 한국이 그립다면서 독일엔 난데없이 눈이 왔다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향수병에 걸렸나 하고 딸의 SNS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서로 품앗이하듯 베를린에 있는 선배가 딸에게 놀러 오기도 하고 딸이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독일 뿐 아니라 저가 항공과 값싼 에어비앤비를 찾아내 서넛이 영국, 벨기에, 스위스를 다녀오고 방학 때는 친한 친구들이 한국에서 독일로 건너가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에게 받아간 찬조금이 떨어질 때까지 여행하더니 다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또 여행을 다녔다. 숙박비 아낀다고 공항에서 노숙하거나 저렴한 밤기차를 타고 다녀 위험하다고 잔소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로 여행경비가 싸고 단체관광객이 없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며 언제 다시 유럽에 오겠냐고 항변한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지 의심쩍기도 했지만 금요일엔 수업이 없고 부활절 방학처럼 학기 중간에 제법 긴 방학이 많았다.


 딸처럼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점점 여행도 귀찮아진다. 가고 오면서 버리는 시간, 좁고 불편한 잠자리, 낯선 거리에서 목적지를 찾아 떠도는 일들이 피곤했다. 소설가 김영하도 <보다>라는 수필집에서 비슷한 생각을 적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는 너무 멋진 여행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일보다는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당당히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은 선택의 문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서울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는 시인에게 그 이유를 묻자 “나갈 필요가 없어서”라는 답을 듣고 적은 말이라고 한다.


 여행은 그의 말처럼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남들이 간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고, 떠나지 못한다고 초라해질 필요도 없으며 가지 않는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나라면 아르바이트 안 하고 여행 안 다닐 텐데 딸에겐 경험과 추억, 인스타에 올릴 멋진 사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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