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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채 Jul 13. 2023

돈 필요 없다고 은퇴하고 나니 막상 돈 생각뿐

대책 없는 은퇴러의 고민

무슨 일인지 지난 글의 조회수가 4000회가 넘었어요. 

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퇴한 지 이제 7개월 차. 

비이상적이던 건강도 회복되고, 이제 쉴 만큼 쉬었다 이건가.

슬슬 머릿속에 돈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쉬었더니 돈 빼고 모든 걸 되찾은 느낌.

원래는 "쓰는 것 < 버는 것(물론 노동 수입 말고)" 시스템을 만들어두고 은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직장을 뛰쳐나왔다. 

어차피 돈은 거의 쓰지 않아서 어떻게든 되겠지, 남은 돈이 바닥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란 마음으로.

사실 임신 계획이 생기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도통 들어서지 않는 아이 덕분에(?) 내 몸이 정상이 아니란 걸 더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난임병원에선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늘 두통과 근육통, 위장병에 화병까지 달고 살았으니 나라도 이 몸엔 잉태를 못하겠다 싶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타이레놀과 소화제를 달고 살았으니.

 

자유를 외치며 뛰쳐나온 후,

그렇게 놀고먹고 운동도 하고, 사랑스러운 개딸과 붙어있으며 힐링도 했더니 6개월 만에 정말 말 그대로 '살 것 같다.'

내 위장은 이제 돌도 소화해 낼 만큼 제 기능을 톡톡히 해낼 수 있게 되었고(먹었다 하면 쭉쭉 소화해 낸다),

올해 들어 두통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믿으실랑가.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주변에서 나를 온화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한 번 유산된 후로 아직 임신 소식은 없으나 작년에 비해 나는 월등히 건강해짐을 느끼고 있다.

옷걸이로 쓰던 트레드밀을 요즘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강도 인터벌 운동도 하는 중이다. 

나라는 사람이, 운동을 하다니.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우리 집 똥강아지처럼 인생 뭐 있어 마인드로 살고 싶다.



돈 빼고 모든 걸 되찾았더니, 머릿속에 돈만 맴돌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즐거운 은퇴러인 것 같지만,

사실상 이제 좀 살 것 같으니 스멀스멀 돈 걱정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직 통장에 거금 오백만 원이 남아있고, 한 달에 오십만 원도 안 쓰기 때문에 계산 상으로는 10달은 더 버틸 수 있다.

희한하게도 이 오백만 원은 6개월 동안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들어뒀던 적금이 만기 되기도 하고, 주식이 실질적으론 마이너스를 달리고 있지만 야금야금 배당금을 내놓기도 해서인 듯하다.

그래서 10달보다 더 오래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왜 이렇게 돈 걱정을 하는 걸까.

(물론 남편이 버는 돈도 있지만, 나는 일 못하겠다 때려치워놓고 남편이 힘들게 번 돈으로 놀고먹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건 없는 셈 치고 있다.)


식비가 별로 안 든다. 옥상텃밭에서 맛있는 게 무한으로 나온다. 


하, 나는 태생적으로 이렇게 걱정투성이 청개구리 인간인가.

돈 벌 땐 돈이 제일 싫었고,

돈 안 벌 땐 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

돈 벌 땐 고통을 감내한 만큼 돈을 즐기고

돈 안 벌 땐 이 자유와 여유를 즐기면서 쉬엄쉬엄 살면 될 것을 그게 이렇게나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어떡할 거냐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1. 재취업 

2. 이전 일이 너무 싫었으니, 새로운 직업 찾아보기?

3. 머릿속에서 돈 몰아내기?


재취업이라니 생각만 해도 두통이 몰려온다. 

아니, 이 몸과 마음 상태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으려나.

일단 든든한 오백만 원 믿고 이건 최대한 후순위로 미뤄놓자.


그럼 새로운 직업 찾기? 

일단은 디지털 노마드가 딱 내 취향이긴 한데, 현재 취미로 하는 네이버블로그 수익은 월평균 5만 원이 안된다. 

이건 직업이라고 하긴 어렵지..

내가 좋아하는 농사가 직업이 되려면 이것도 한밑천 필요한데 오백만원으로는 땅도 못 사네.

어디 누가 나 행복한 부자 만들어줄 사람 없나요.


아님 최소 올해까지는 돈 생각 셀프금지령을 내리고 눈 딱 감고 이대로 놀아?

지금껏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처음으로 이렇게 쉬는 건데!

마음 고쳐먹고 에헤라디야 난 돈 그런거 모른다를 시전해버릴까.


우리 집 똥강아지처럼 살면 걱정근심이 없을텐데.


결론이 어디로 가든, 고민만 하다가 이 꿀 같은 자유시간을 날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서 나아갈 길을 정하고 새로운 한 걸음 내딛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대책 없이 때려치운 은퇴러의 푸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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