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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채 Jun 16. 2023

단독주택에 사는 이유, 식물이 좋은 이유

[집]에서 행복을 찾았다.


편리한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고른 이유는 수만 가지가 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동식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랑스러운 개딸 콘이와 장수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토끼 어르신,

그리고 제 집처럼 드나드는 까치 부부, 만날 때마다 즐거움을 주는 꿀벌 등등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행복한 집. ♥


집 안에서도 마음껏 뛰어놀고 옥상도 놀이터처럼 사용하는 걸 보면 너무 보기 좋다. ♥


올해 9살인 토끼도 마찬가지.ㅎㅎ

아파트 살 땐 갑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산책도 무서워해서 늘 집에만 있었던 토끼.

이젠 옥상 전체가 토끼집인 셈이다.

간식 화분의 풀도 실컷 뜯어 먹으면서 행복하게 몇 년은 더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식물들.

성장하고 열매 맺고 수확하는 기쁨을 주고 꽃은 그 자체로도 설렘을 준다.


흔하디흔한 꽃들도 내 손으로 파종하고 키워 꽃을 피우면 그렇게 곱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던 메리골드가 이렇게 예쁜 꽃인 줄 키우고 나서 알았다.


눈, 코, 입 그리고 촉감으로, 

거기에 꽃을 찾아온 꿀벌의 윙윙 날개 소리나 새소리, 바람 소리까지 더해지면

식물이 오감을 자극하면서 마음에 고요한 행복이 퍼지기 시작한다.


식물이 더 좋아졌던 시기가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인 걸 생각해 보면

나는 분명 식물로부터 치유받고 있다.


꽃다발 선물에 기쁜 적이 없던 천성 이과 체질의 나인데,

내가 키운 꽃들이 이렇게 좋은 이유는 정말 '내가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모래알만큼 작은 씨앗을 촉촉하게 적셔 따뜻하게 두면 초록초록 작은 새싹이 돋아나고

햇빛 가득 받는 곳에 두면서 혹여나 마를세라 매일 들여다보고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튼튼하고 진한 초록의 잎사귀들이 무성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찌 저런 색과 향을 가졌을까 감탄스런 꽃들이 피어난다.


사람 일이라는 게 잘 하면 본전이고 못 하면 티가 나는 일이 대부분인데,

식물을 키우는 것은 그 과정 하나하나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나의 작은 실수나 게으름 정도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내가 의도하는 바대로 손을 대면 놀라울 만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다가도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모든 식물이 잠드는 것,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면 몇몇 식물은 이별해야 하는 것.


내가 손 쓸 수 없는 것들을 아프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도 가르쳐 준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방법은 다르다.

문제와 고비를 만나 극복하며 성장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과정이 성장보단 고통인 사람이 있다.


나는 직업적 성취감보단 고통이 컸던 사람으로서

내 공간, 내 집, 내 가족과 초록초록 풀들에게서 나를 돌아보고 성숙하는 시간을 받았다.


식물을 키우면서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다.


햇빛이 뜨거워질수록 에어컨과 선풍기를 강하게 틀었던 예전과 달리

옥상 식물들이 더 빠르고 더 신나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여름.


단지 뜨겁고 짜증 나는 것으로 여겼던 햇빛이

이제 옥상 식물들을 무성하게 만들고

더 그늘지게 만들어 집을 시원하게 해주고

더 많은 수확물과 꽃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햇빛, 바람, 비, 눈 등등 사람에겐 그저 '날씨'일 뿐인 자연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이

식물이 있을 때는 식물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각자 역할이 있는 현상이라는 점.


이걸 깨닫고 나니 해가 떠도 고맙고, 그늘 져도 고맙고,

비나 눈이 와도 고마움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환경 보호에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나는 식물을 키움으로써 환경보호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단독주택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말이 있는데,

옥상텃밭을 가꾸는 우리 집의 경우

여름엔 식물들이 뜨거운 햇빛을 받아줘서 집 안은 훨씬 시원하고

겨울엔 화단의 흙이 보온의 역할을 해줘서 따뜻함이 유지된다.

아파트 살 때보다 냉방비와 난방비가 적게 든다.


만약 옥상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면 아마 상황은 달라졌을 것 같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런 취향을 가지고

단독주택에서 동식물과 함께 사는 선택을 한 것이 약간은 괴짜스러운 취급을 받을 때도 있다.


아주 친한 친구들도 같은 취향을 가진 친구는 없다.ㅎㅎ


그래서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함께 공감해 주는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있어서. ♥


ps. 

풀 좋아하는 엄마를 만나서 우리 콘이도 풀을 좋아하나 싶을 때가 있다.ㅎㅎ

산책하다 풀 뜯어 먹기가 일상인 우리 콘이.


옥상텃밭 이야기는 네이버 블로그 [그채, 낭만집 이야기]에서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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