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외쳐야 하는가?
우리는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2021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건이 있다. 바로 ‘정인이 사건’과 ‘정민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입양을 한 입양인이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하여 죽게 한 사건이고, 정민이 사건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명문대 학생이 밤늦게 술을 마신 후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을 보며 ‘보육원에 맡겨지지 않았다면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정민이 사건이 터졌을 때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의혹을 풀기 위해 부모가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 없이 죽은 보육원 후배들이 생각났다. 이 두 사건을 보며 자식을 버리는 부모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이 대비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난 어린 시절을 생각을 해보면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값싼 불량식품도 사 먹어 보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이 사 먹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만 했다. 좋은 옷을 입은 친구들, 오락실에서 거리낌 없이 즐겁게 게임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았다. 간식 하나 맘껏 먹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는 그 상황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보육원에서 주는 대로 먹고 입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부작용 때문인지 한동안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나, 어려움을 느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러한 부작용(?)은 지속되었다.
대학생이 3학년 때는 학과 사무실에서 일했다. 같은 과 선배이기도 한 조교 선배의 안내에 따라 교수님의 수업 준비 보조, 차 대접, 학생 문자 연락 등 여러 일을 하였다. 당시에는 학과 사무실 아르바이트를 선호하는 학생이 많아 경쟁률이 치열했는데, 당시 친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어 내가 운 좋게 친구 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학과 사무실 보조일의 가장 큰 장점은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했다.
조교 선배는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너무도 버거웠다. 선배가 교수님께 혼이라도 나고 온 날에는 더욱 심했다. 한 번은 교수님께서 과사무실에 방문하셨는데, ‘무슨 차를 드릴까요?’라는 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조교 선배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았다. ‘너, 그렇게 하다가 사회에 나가면 무슨 일도 잘할 수 없을 거다’라는 악담까지 들어야 했다. 교수님을 대하는 나의 서툰 모습이 그 선배에게는 어리석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며칠간 고민하며 일을 그만 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선배가 나의 가족 관계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느껴지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보육원에서 평생 남자들끼리 살면서 형들에게 수없이 매를 맞았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도 같았다.
보육원에서 크면서 나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보육사는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천성이 그릇된 사람은 어디에 가든 그릇된 짓을 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또 부모 없이 자란 이들에 대해 ‘족보가 없다’거나 ‘근본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자주 목격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비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악착같이 열심히 살고자 노력했다.
나는 보육원에서의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한창 성장할 시기의 보호아동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육원 출신 아이들의 삶이 평생 불행하리라는 법은 결코 없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지내며 다소 거친 행동을 했더라도 건강한 청년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많은 걱정을 하며 살아왔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20년째 교직생활을 즐겁게 잘하고 있다.
나는 어른이 되기 전 자신의 삶의 방향을 더 바람직한 쪽으로 향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더 세상에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고, 혼자서도 인생을 멋지게 개척해 나가는 이들이 있다고, 그런데도 보호아동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비록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보호아동의 건강한 삶을 위해 외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만 여덟 살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 명절날 대통령하사품이라며 선물세트를 받은 일, 국가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일이 감사했다. 하지만 따져 보면 그것은 호의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커가면서, 그리고 고아를 위한 권익을 찾기 위한 일을 찾아보면서 보호아동에겐 더 많은 것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동양육시설의 운영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감히 외치자고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보호아동까지 왜 국가에서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장애인의 경우와 비교를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단체는 매우 많다. 그 단체는 많은 경우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나 가족들이 주체가 되어 움직인다. 장애인의 부모들은 장애인의 복리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 우리 주변에 쉽게 만나는 장애인복지센터는 그들이 노력한 결과이다. 장애인 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서울지하철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까지 10년간 투쟁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러나 보호아동에게는 부모가 없다. 물론 부모가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친권만 행사할 뿐 보호아동의 양육 환경 및 방식 등에 대한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는다. 보호아동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육원 생활 중 무엇이 불편한지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보호아동은 속앓이만 하며 암담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힘은 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든지도 잘 모른다. 무언가 불편하고 마음이 무겁지만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힘이 매우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들이 함께 움직인 결과로 많은 정책들이 개선되고 장애인 복지도 나아지고 있다. 보호아동의 경우에는 그들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없기에, 부모가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아동양육시설의 변화도 더딘 것이다.
거기에 당사자들은 사회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장애인은 외모에서 장애가 확인되지만 보호아동은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도 ‘보육원 출신’이라고 하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보호아동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장애인과 보호아동의 비교가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고아 장애인을 만날 때면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장애가 있어 사회에 나서기를 더 힘들어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참으로 마음이 쓰린다. 보육원에서 함께 성장한 이들 중에는 경계성 지능을 지닌 동생도 많이 있었다. 그들이 퇴소 후 직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보다 안정된 생활 지원이 필요한데 ‘과연 누가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세상에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나는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자녀 지원 업무’와 ‘탈북 학생 지원사업’ 업무를 맡았다. 또한 학생부장을 맡아 수학여행이나 스키캠프를 운영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학생들을 지원하였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안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필요한 것을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학교와 사회의 변화가 시작된다.
2017년에는 이러한 일도 있었다 장애 학생의 부모가 무릎을 꿇은 사진 한 장으로 온 세상이 큰 충격을 받은 일이었다. 그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당시 여러 진통 끝에 개최된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는 원활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찬반의 대립으로 분위기만 격앙되자 장애 학생의 학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아이를 위해 엄마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2021년 5월 <학교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더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엄마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부모의 역할이 매우 컸다. 결국 2020년 3월 서진학교가 문을 열었고 차별당하고 배제된 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물론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묵직한 울림을 전하였다.
나는 보호아동 관련 정책도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 학생은 부모가 움직여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부모가 없는 보호아동은 그럼 누가 이러한 일을 해줄 것인가. 우리가 함께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누가 이들의 소외된 인생을 책임져 주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함께 외쳐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하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이선균이 송강호에게 지하철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하였다. 아마도 이선균도 어릴 때엔 잘 살지 못했던 것 같다. 지하방에서 나는 냄새를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선균이 송강호 가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부자들은 조여정처럼 악의 없이 송강호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 계급적 위치에 따라 부자와 빈자의 삶을 희화한 것이다.
보호아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됐지만 보호아동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소외된 채로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현실은 너무다 답답하다.
나는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바뀌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더 약한 이들을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보호아동들이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란다. 고아들은 스스로의 삶을 위해 소리 높여 외치기를 바란다. 좀더 많은 이들이 보호아동 및 자립준비청년의 현실적인 삶에 대해 더 많이 알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