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을 생각하는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보통의 청춘, 보통의 인생
내가 보육원 출신임을 공개하면 나와 관계있는 분들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시곤 한다. 학창 시절 친구부터 동료 교사분들, 학교의 제자, 교회 성도분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 최근 한 선생님께서 보육원에서 자란 내가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존경한다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나의 첫 책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를 보고 감명을 받아 보육원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주셨다. 나는 뿌듯하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보육원에 자원 봉사를 한번 함께 가보자고, 후원도 해보자고 권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절대 노,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에 권유한 것인데 막상 거절을 당하니 너무도 서운했다. 평소 이웃을 생각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해 더욱 기대했던 탓이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보육원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시선이었다.
그분은 보육원 아이들이 애처롭다고 표현하였다. 나의 실망은 커졌다. 아이들이 애처롭다니. 평소 선한 표정을 짓고 다니시기에 그분에 대한 인상이 좋았는데 아이들이 애처롭다고 표현하셔서 나는 너무도 당황했고, 그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괜히 자원봉사 얘기를 꺼냈구나, 후회스러웠다.
나는 평소에는 웬만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자고 권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2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보육원에 살면서 수많은 봉사자들을 만나 보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를 하러 가서 보육원 아이들의 좋지 않은 모습을 목격하고 그로 인한 편견의 시선을 나에게도 적용해 나를 평가할 것만 같았다. 또 괜히 봉사를 권유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나도, 상대방도 껄끄러운 기분이 들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황당한 마음도 들었다. ‘애처롭다’니. 혹시 이분은 나도 애처롭게 보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애처로워 보일 수 있다. 안쓰럽고 처량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고 시선이니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며칠간 이 문제를 골똘히 고민해 보았는데 나는 그분이 가진 아이들에 대한 시선과 보육원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아이들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깊은 이해에서 온 것이다.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아픔, 부모를 보고 싶어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상황, 사회에서 겪는 차별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아픔을 마치 내 일처럼 깊이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육원 아이들을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되고 너무 강한 동정심이 들기에 오히려 보육원 봉사를 꺼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감정은 인간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연민의 정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느껴졌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애처로움 때문에 자원봉사마저 꺼리게 된다는 것은 ‘아이들 = 애처로움’이라는 편견에 갇힌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이 애처롭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열심히,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자신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보육원 봉사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처롭다는 마음이 아닌, 그보다 더 고귀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육원 아이들을 떠올릴 때 애처롭다는 마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보육원에 찾아갔을 때 ‘이 아이들이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보다는 설령 봉사자 때문에 상처를 받더라도 누군가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애처롭다는 말로 보육원 봉사를 꺼리기 보다는 일단 봉사를 한번 해보면서 그런 생각을 바꿔보기를 바란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20대 초반 대학생일 때 어느 보육원에 학습지도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르치던 아이가 교통사고로 천국에 갔던 것이다. 그 아이는 당시 고작 13세였다. 이에 그 선생님은 부모 없이 성장한 그 아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사망에 이른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아이가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졌고, 그 후로는 보육원에 봉사하러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고 했다.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이 너무나 잘 이해된다. 그 아이에 대한 관심이 그 선생님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으리라.
우리는 누구나 안쓰러움을 갖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육원 아이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 부모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한 이들이 부모 없이 자라는 아동을 보면 누구나 보편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느낌과 생각은 더 나쁜 편견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부모 없는 아이라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그 아이들 자기 자신을,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우리 모두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위해 우리는 보육원에 봉사를 가야 한다. 보육원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보육원 아동은 부모가 없을 뿐이지 평범한 아이들이다. 그들을 바라볼 때 불쌍하거나 애처로운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봉사를 해보기를 권한다. 여러분(자원봉사자)의 관심과 정성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많은 분이 보육원에 봉사하러 갔으면 한다.
어느 사회든 1%의 보호 대상 아동이 발생한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이 보통의 청춘, 보통의 인생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