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는 피해자이다

그럼 가해자는 누구일까?

고아는 피해자다


한 청년이 어렵게 결혼 적령기를 놓치고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특수한 환경,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아이를 낳고 한동안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날 외국인인 생모가 별안간 가출을 했다. 언어의 장벽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들 버리고 집을 나간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온전히 양육할 자신이 없어 보육원을 찾았다. 가출한 생모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을 낳아서 기르다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는 고아원에 버려진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아이이다. 아이는 부모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시설에 맡겨져 쓸쓸히 외로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로 인하여 보육원에 맡길 수는 있지만 이렇게 보육원에 아이를 맡긴 90%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찾지 않는다. 또한 나중에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가정에서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고아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다소 섬뜩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아동학대, 이혼, 미혼부모, 혼외자, 한부모 가정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피해자 있으면 가해자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가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방임, 정서적 학대, 부모의 외도나 이혼으로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은 크나큰 아픔을 겪는다. 고아가 피해자이기에 부모가 가해자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방관하며 너무도 쉽게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긴다.


우리 주변 곳곳 도로에는 어린이 보호구역이 있다. 이처럼 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들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정작 보호가 필요한 고아원 아이들, 보호 종료 아동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제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들을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피해를 국가가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고아(보호 아동)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법적으로 처벌 받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해마다 출산율은 낮아지지만 보육원에 맡겨지는 아동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더 적게 태어나도,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어른들의 인식이 한참 잘못된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부모, 어른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금 더 우리가 좀 더 더 신중하게 좀 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부탁해본다. 고아원 아이들을 피해자로, 피해 아동으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아이들을 피해 아동으로 만든 부모들은 반성을 하고 있는지, 피치 못할 상황에서 아이를 맡겼더라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지 궁금하다.


피해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겁지만 아이들을 상처를 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국가는 하루 빨리 제대로 마련하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책임 의식, 부모로서의 소명,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려도 된다. 고아가 피해자라는 말로 인해 아이들이 의기소침해 지거나, 또 다른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어른들에게 조금의 부담감을 가지고 각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겠다. 또한 아이들을 버린 부모의 무책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좀 더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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