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라는 말

고아원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착하게 살라는 말


보육원 아이들에게,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로 '착하게 살라'는 것이다. '착하게 살자'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보통 착하지 않은 이들에게 쓰이는 말이다. 미디어에서는 교도소에 다녀온 전과자, 조폭들의 구호처럼 쓰이기도 한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듣기에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남의 눈에 거슬리게 살지 말라는 의미로 들린다. 나의 편견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는 고아에 대해 지독한 색안경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고아라고 하면, 고아원 출신이라고 하면 부모가 없고 나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미래가 불투명 하다고 믿는다. 돈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없기 때문에 착하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정서도 착하게 살라는 표현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아이들만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착하게 살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고아원 아이들을 돕는 후원자님들도 가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도움을 받고, 후원을 받았으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착하게 자라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고 있으니 너는 그걸 갚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아원 아이들이 도움을 구걸하는 거지도 아니고 그들이 부모가 없이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잔혹한 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 더 짓밟는다. 나도 어릴 때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의 의도가 결코 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누구나 착하게 생활해야 하는 것이지, 착하게 살기 위해 후원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같은 보육원에 사는 한 아이가 학교에서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선생님은 학교에 다니는 모든 보육원 아이들을 싸잡아 평가했다. 돌봐줄 부모가 없기에 너희들은 더 똑바로 살아야 한다든지, 시설에 연락해서 아이들 관리를 잘 해달라 한다든지, 모든 학생이 듣는 데서 보육원 전체를 비난하는 듯한 표현도 했다. 누군가의 갈등, 개인 학생의 문제를 보육원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엄마가 없어서, 공부를 못해서,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데 보육원 아이들이라고 해서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다.


교육학에서도 환경적인 요인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고유한 내면의 성품과, 기질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보육원 출신이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안된다. 한 보호 종료 아동이 회사에 처음 들어가 업무가 미숙하다고 하면, 그로 인해 회사 내에서 사람들과 갈등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보육원 출신이기 때문일까? 회사의 교육 시스템이나 조직 문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아이들을 상처받게 하고, 우리 사회의 그릇된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고아원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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