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의 길, 희망의 길
지난해인 2021년 7월 31일 정부가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자립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립은 되었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들이 드디어 시행된다는 발표에 나는 참으로 설레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만 18세가 된 아이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채 사회로 내몰리듯 나아갔다면, 새로 마련된 정책들은 아이들이 자립을 위한 역량을 갖추고 자립의 주체로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이었다. 진작 마련되어야 했었지만, 이제라도 하나씩 바뀌어 가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특히 인권의 측면에서, 보호 종료 아동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의 인생을 위해서 마련된 정책이기에 벅찬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바뀔 수 있는데 그동안 왜 이렇게 바뀌지 않았을까 원망스럽기도 하다. 보육원 아이들의 보호 종료 시기가 만18세로 정해진 것이 무려 1961년의 일이다. 60년 만에 보호 종료가 연장된 것이다. 이제 만 18세가 아닌 만 24세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보호를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혀졌는데 60년의 세월은 너무도 길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변화는 시작되었다는 것, 아이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있다. 보호가 연장되었다고 해서 아이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호를 연장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만 24세가 지나면 청년들은 이제 진짜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며 힘든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견디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맞이해야 하는 삶은 보육원에서의 삶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친가족과의 관계는 물론 연애를 하게 되면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혼주석에 대해 고민할 것이고 양가에 인사를 할 때 벌어지는 일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등 남다른 상황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겪을 것이다.
수많은 보호아동 출신으로서 겪는 일들은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못하기에 남들에게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한 인간이 물리적으로 독립을 해도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립에 성공하지 못할 수 는 있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건, 보육원과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건 자립을 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확고한 인생관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장애인처럼 아동복지시설 출신들도 선별적인 복지를 의무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증처럼 아동복지시설증을 갖고 사회적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보다 많은 보호청년들이 자립을 하는데 매우 큰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보호청년들도 각성이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보육원을 퇴소한 후 많은 청년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데 그로 인한 지원금을 받으며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너무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럴수록 일할 능력이나 의지는 사라지게 되고 더욱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보호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육원 퇴소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보호연장은 단순히 보호기간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현재 아동복지시설과 분리된 공간에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자립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자립 교육에 있어서 기존의 살던 보육원 공간과 분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미 청소년 시기를 넘어 성인으로 진입하는 시기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초등학생 후배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서로 불편할 수 있다. 또한 보육사들과의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보육사는 기본적으로 아동을 양육하는 교육을 받아 지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보육사들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청년들을 돌본다는 것은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보호청년들에게는 그들만의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 그 시설에서 실질적이고 다방면의 자립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사회성을 가르치고, 인관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 의사소통의 기술을 기를 필요가 있다. 의견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 선배나 동료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무엇보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딱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시설이라는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 만약 취업 후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보호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노무사를 소개해 주거나 다른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등 진정한 자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보호아동들의 아름다운 결실은 자립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립의 끝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며 가정을 통해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제껏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앞으로는 가정을 위해 살며 인생의 고귀함을 몸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형성한 가정을 통해 그 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버린 부모를 이해하는 것, 이것은 보육원 출신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립에 대한 생각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 자립교육은 만 15세 이상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자립이라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자, 막연한 상상이 될 수 있기에 사실 아이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이들에게 더 어릴 때부터, 조금 가혹하게 느껴지더라도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립을 왜 해야 하는지, 자립을 위해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이 계시면 보육원 퇴소이후에는 보육사와의 관계나 후원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함을 알려줘야 한다.
정부의 발표 중 가장 환영할 만한 것은 바로 공공후견인제도이다. 공공후견인은 아이들에게 멘토가 되어 법적 후견인으로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으로 법적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제도는 아이들에게 커다란 안정감을 전해줄 수 있으며 수많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돕고, 혹여나 범죄에 노출되었더라도 사회적 방패막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자립을 해야 하는 당연한 현실 앞에 보호아동들이 자립을 머릿속으로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닌, 자립의 과정이 즐겁고 희망적인 일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립으로 인해 고통을 겪다 세상을 먼저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자립에 대한 준비, 자립을 위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