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할 권리, 행복을 누릴 권리

양육할 권리, 행복을 누릴 권리


사람은 왜 태어날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하나의 우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차라리 태어나지 말 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소중한 추억을 쌓고 서로 사랑하며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일까. 살아는 있지만 삶의 의지가 없는 이들은 죽은 영혼이라고 여겨야 하는가? 나는 철학자가 아니기에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생명에 대해 논할 지식은 없지만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어느 생명이라도 그것은 존엄하고 고귀한 것인데 좋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그 생명이 중단되기도 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출산을 통해 생명이 탄생하는 일은 고귀하고 정결한 일이다. 아이를 낳은 성인이 생명에 대한 철학이나 아이의 인생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무차별하게 아이를 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흔하다. 부모가 없기에 정서적인 결핍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생부모와의 단절이 아이의 삶의 끝으로 여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한 부모가 아이의 생명을 버렸다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곤 한다. 버려진 생명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에 인생을 자책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인생을 비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부모가 아이의 생명을 버린 것이 아니라 양육해야 하는 권리를 버린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권리를 버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인 능력과 주변의 시선, 그리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 잡혀 있다. 이 때문에 아이를 온전하기 양육해야 하는 의무를 져버린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의무보다도 중요시 되어야 하는 부모로서의 권리를 가볍게 포기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 마다 인간의 사악함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인간은 온전한 생물체가 아니라 환경에 따라 자식까지 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비교가 적절치 않을 수 있으나 동물들은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성을 소유한 인간만이 너무나 큰 잘못을 하는 것이다. 버릴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동의 생명이 아니다. 그 생명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누가에라도 소중한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표현할 수가 없다. 표현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외치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처절하게 죽어가는 작은 생명들이 이 땅에서 외면 받고 빛나는 날갯짓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생명을 경이 여기는 것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아동을 양육할 권리를 생부모가 포기했으니 우리는 그 아동이 온전히 양육 받도록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안전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주변의 따듯한 관심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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