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은

나는 보육원 출신이다

나의 정체성



나는 보육원 출신이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가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보육원 출신’이라는 말이다. 보육원 출신이라 함은 부모없이 컸다는 뜻이다. 대개 부모 없이 컸다고 말하면 크게 두 가지로 반응이 나온다. TV에서만 보아오던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아니면 잠재적인 사회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어디에 가서 내가 지금의 직업 등을 밝히지 않고 보육원 출신이라고 밝히면 나에게 던져지는 시선은 대략 그러하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그를 나아준 부모와 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참으로 많다. 이러한 아이들이 보육원으로 보내지면 당연히 보육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데, 이들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 않다.


‘출신’ 이라는 것은 자기가 나란 지역이나 집안, 학교 등의 ‘배경’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출신, 00고등학교 출신, 00대학교 출신 등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배경은 한 사람을 소개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배경을 자신을 포장하거나, 자랑스럽게 여길 때 종종 사용한다. 그런데 보육원이나 교도소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경에도 이 ‘출신’ 이라는 말은 빼놓지 않고 쓰인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보육원 출신을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여러분은 아마도 보육원 출신은 사회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역마다 수많은 보육원이 있다. 이러한 시설은 정부와 민간 곳곳에서 운영되고 그 출신들은 한해만 해도 수천 명씩 사회로 나온다. 하지만 스스로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지 않는 한 누군가 보육원에서 자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 어렵다.


보육원 출신들에게 편견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모와 함께 자란 사람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자. 한부모 가정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거노인이나 최상위계층 등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유독 부모없이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언론도 한몫을 했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고아들은 죄다 범죄를 일으키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일반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인다.


나 스스로가 보육원 출신이기에 나는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같은 처지를 겪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고 친근감이 든다. 비록 친동생은 아니더라도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동생들은 보육원 퇴소 후에도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을 나도 잘 알기에,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고 힘들게 살아가거나 간혹 안타까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함께 슬프고 힘들어진다. 자립에 성공해 가정을 이뤄 결혼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내 자식이 결혼을 한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후배로 여기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명절을 맞이하여 천애고아인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는 경계성지능을 가졌기에, 정상적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다소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기도 자주 당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삶을 혼자 꾸려나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대견해 보이기도 하지만 변변찮은 기술 하나 없이 아르바이를 하며 살아가는 후배를 보면 그 아이의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커다란 역할을 해줄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 가끔 만나 밥이라도 먹으며 아픈 데는 없는지 살피고 이야기 하는 정도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자 어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혈육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려고 한다.


보통 00 출신이라고 밝히고 같은 출신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심지어 교도소와 같은 교정시설의 출신들도 서로 만나게 되면 동질감을 가질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비록 다른 보육원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고아로 성장한 아이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한번더 마음이 가고 눈길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상대 후배들은 다른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보육원 출신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후배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성인이 되었는데 괜히 간섭받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 나의 일방적인 조언이나 관심이 아이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육원에 대한 인식도, 보육원 출신들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어 퇴소 후 관계를 맺는 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육원생들끼리라도 서로 관심 갖고 돌보지 않으면 이 땅의 많은 고아들이 올바르게 자립하기가 힘들다. 돈이야 혼자 벌고 살아갈 수 있겠지만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교류하며 마음을 나누고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보육원 출신들이라면 조금 더 쉽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 아니더라도 고아라면 함께 서로 이해하고 서로를 형, 동생, 언니, 누나로 여기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당부하고 싶다. 나 스스로가 먼저 고아의 길을 걸어왔으며 고아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라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부정할 수 있을까? 고아가 갑자기 부모 있는 사람과 같아질 수 있을까? 아마도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부모가 되기까지는 고아로서 누군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 땅의 모든 보육원생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형이 되고자 다짐한다. 왜 우리에게는 비록 혈육이 없지만, 보육원 출신은 모두 형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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