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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를 통해 배워야 한다.

고아를 통해 배워야 한다.

고아를 통해 배워야 한다.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종종 우리는 이 두 개의 카테고리로 사람들을 구분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강자가? 아니면 약자가? 나는 단언컨대 강자가 구분을 짓는다고 말하고 싶다.     


강자를 살펴보면 재력이 있는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사회적 관계망이 좋은지 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재력으로 강자라고 할 수 있을까? 강자들은 과연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하는지 반대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자인 것을 아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강자를 재력, 사회적 지위, 네트워크 등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들을 진정한 '강자'로 만드는 것일까? 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강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반대로, 약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 장애인, 탈북민, 보호 아동 등이 '약자'로 분류되곤 한다. 이처럼 '약자'로 구분되는 사람들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까?     


불행하게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강자라고 처음부터 강자였던 것은 아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 출발점이 결정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이 출발점으로 인해 강자 또는 약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은 다이아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태어날 때부터 강자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누구나 강자도 약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안정된 삶과 여유를 누리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들은 삶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하지만 강자와 약자 사이의 행복의 차이가 재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의 재산은 필요하겠지만,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은 결국, 건강을 잃고 삶을 피폐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나는 재력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자들은 종종 약자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행동을 보인다. 자신들이 가진 재산이 본인들을 더 우월한 존재로 만든다는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존중받으며 배려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돈이 있다고 건물주는 임차인에게 비인격적 모욕감을 주거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계약을 해지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리곤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강자'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강자와 약자의 라벨을 넘어서 우리가 공존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감과 이해를 토대로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아마 혹자는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약자로 꼽히는 고아를 통해 배울 것이 있다는 주장에 처음에는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고아를 통해 특별히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사람이라면 누구한테나 서로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이글을 통해 고아, 즉 사회적 약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인간은 모두 빈손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결국에는 빈손으로 떠난다. 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돈이 많으면 부자, 자식이 많으면 부자, 친구가 많으면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약자의 기준은 더 단순하다.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생존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아, 즉 사회적 약자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그것은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랑의 마음, 배려하는 마음, 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 공동체 의식, 베풂의 실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나는 자기 성찰의 방법과 진실한 인간관계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인간이 결국, 혼자임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 능력에 따라 자신을 가치 있게 느끼거나 가치 없게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런 척 없는 생각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나이, 장애, 종교, 성별, 출신, 국가, 임신, 학력, 피부색, 인종, 사상, 정치적 의견, 병력 출진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생태적이거나 존재적인 자연현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지만, 인간과 사회는 종종 다른 사람을 분리하고 배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쟁과 학살과 같은 비인간적인 현상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고아를 통해 배울 것은, 고아를 객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고아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 의식을 갖고, 베풂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먼저, 고아를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잃고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자신을 망가뜨리는데, 이는 고아들의 삶을 통해 배운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고아를 통해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이게 한다. 고아들은 고통과 생사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통해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또한, 고아를 통해 더불어 사는 마음을 갖는 것은 서로 소중함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는 차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는 고아들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가치이며,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아를 통해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생의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한다.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아들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아를 통해 베풂을 실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고귀한 인생을 살게 해 준다. 자신의 가진 것을 자랑하는 대신 선을 행하며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베풂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온 세상에 알리고, 인간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고아들을 통해 좀 배우고 살자. 인생은 부와 명예의 성공만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고아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실패와 고통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생의 참된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이 앞으로도 고아들과 함께 인생의 교훈을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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