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감수성을 기르자
고아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사회
어느 보육원에서 보육사가 퇴소청년에게 ‘퇴소하면 반드시 보육원 출신인 것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 보육사의 의도는 지난 오랫동안 아동들을 양육하면서 퇴소생들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것을 몸소 듣고 후배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었으리라. 그 상황은 이해하지만 너무나 슬픈 현실이라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학생이 출신 학교를 숨기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출생배경을 숨기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밖에 보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아는 자신의 모습이 다르니 심각한 경우에는 인격장애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책과 방송을 통해 ‘보육원에서 21년을 살았고 지금도 친생부모를 찾지 못했다는, 아니 정확히는 친생부모가 날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금도 유투브 나행고TV를 통해 나의 불행한 과거를 말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어느 한 보육원 출신 선배가 ‘이런 유튜브 그만 해라. 고아라는 것을 숨겨라’는 댓글을 남겨주셨다. 전혀 모르는 선배의 말에 나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말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댓글을 보니 그동안 고아출신인 것을 숨기며 얼마나 위축되어 살았는지, 또 가끔 공개했을 때 겪은 충격과 아픔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처럼 한 인간이 퇴소를 한 후 40년이 지나도 가슴속에 맺혀 있는 응어리는 지금의 행복도 짓누른다. 이런 현실이 참으로 슬펐다.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 중 보호종료가 되는 사람(보호종료아동)은 매년 2,500여명이나 된다.
수많은 퇴소청년들이 이 사회에 나와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 또 얼마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살고 있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직장에 들어가거나 결혼을 할 때나 많은 상황 속에서 그들은 보육원 출신인 것을 얼마나 드러내며 살고 있을까? 보육원출신임을 드러내는 것은 보호종료아동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퇴소후 사회적응의 성공 여부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최근 보호종료를 앞둔 학생이 퇴소를 앞두고 자살을 한 뉴스는 보호종료가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보호종료가 되면 아동들은 이제 정말 기댈 시설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사회적 보호망마저 사라짐을 느낀다.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보호아동을 위해 여러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고 있다. 자립정착금도 이전보다 늘었고, 퇴소 후 3년간 자립수당도 지원되고 있다.
보호종료기간연장과 자립에 대한 지원등에 대한 논의는 기부단체와 민간기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보호대상아동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보육정책이 부서마다 분절되어 있어 연속적이지 않다는 점과 아동의 심리적 문제를 온전히 다루지 못하는 점은 아동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동들의 생각이 인정받고 스스로 삶의 주체자가 될 수 있도록 보호시설의 운영 방법도 개선되어야 한다.
아동들이 어릴 때부터 당당하게 소리를 낼 수 있을 때 퇴소 청년들도 어디에서나 인정받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더불어 보호아동들의 당당한 외침도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고아(보육원 출신)이다. 고아이지만 부끄럽지 않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성장하면서 국가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았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고아에 대해 사회적 편견이 난무하고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그 속에서 숨어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고아들 스스로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차별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의 연약함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알려야 한다. 오해와 이해는 아주 밀접하다. 고아(보호종료청년)이 사회적 약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보호종료청년들은 보육원에 사는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최소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아동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모른채 살아가곤 한다.
고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보일 수 있는 사회, 또 고아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하며 그들의 삶에도 깊은 관심을 갖는 ‘고아감수성’을 가진 사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