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 편견이 없는 소중한 친구,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친구
나의 두 친구 이야기
사람은 살면서 평생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가깝게는 회사 동료에서부터 학창 시절의 친구, 학원, 초·중·고 때 친구, 학교 선후배 그리고 일상에서는 집 근처의 가게 주인, 아이들의 유치원 친구 엄마, 교회 식구, 동호회 사람 등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가깝게 지내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친구와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잘못된 길을 갈 때도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보육원에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많았다. 모두 10명 정도 되는 보육원 친구들이었다. 친해지고 싶지 않아도 같은 보육원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시설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으며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삶에 대한 관점도 서로 비슷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갖는 나쁜 습관들 때문이었다. 보육원생만의 특성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친구들은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서 오는 불만, 증오, 쉽게 삐짐, 아집, 배려 부족 등이 유난히 심했던 것 같다. 모든 보육원 아이들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서로 앙숙처럼 지내는 아이도 적잖았다..
보육원 안에서는 동기 사이에서도 서열을 정해야 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형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 싸움을 하거나 서로 치고받는 심한 싸움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동생 동기들이 싸울 때는 너 나 할 것 없이 말리는 것이 아니라 과연 누가이기나 보자,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단체생활에서는 어떤 형에게 잘 보이느냐가 정말 중요했다. 싸움을 잘하는 형과 친해지면 간식을 잘 얻어먹거나 동기들과 싸웠을 때 나름 유리한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친한 형을 믿고 더 버릇없이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보육원 친구들뿐 아니라 다른 친구도 여럿이다. 현재의 내가 있도록 함께해 준 친구, 30년 이상을 지내 오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친구, 같은 종교 활동을 하면서 영적으로 나를 잘 이끌어준 친구, 고등학교 졸업 후 해마다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 등이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이런 친구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친구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 친구의 소중함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느끼게 되었다는 표현보다는 친구가 나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친구와 함께 지내느냐에 따라 인생관이 바뀐다고 하는데 나는 친구 덕분에 인생을 재발견하였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있었다. 특별히 나에게 도움을 줬다거나 신경을 써 준 것도 아니다. 또 내게 일일이 조언을 하는 친구도 아니지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내 인생의 나침판이 되는 친구이다. 그는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초등학교 때 친구, 이 글에서는 형교로 칭하겠다.
형교는 초등학교 처음 만났는데 처음에는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형교는 보육원 근처작은 가게집의 아들로, 초등학교 때 전학 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서성이면서 가게에 진열된 과자를 보았다. ‘쟤는 언제든 저 많은 과자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형교를 항상 부러워했다. 보육원 아이들이 자주 보육원 주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곤 했는데 나도 다른 가게에서는 훔쳐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차마 친구인 형교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맘에 내키지 않아 한 번도 훔친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형교와 함께 지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때 안 훔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초등학교 때 나를 떠올리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천방지축인데다 너무나 활동적이어서 친구로 대하기가 매우 힘든 아이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형교는 조용한 성격이었고 공부도 스스로 묵묵히 했다. 특별히 무언가 잘하는 것이 없고 무난한 성격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성격이어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둘 다 기독교인이어서 가끔 교회 이야기를 잠깐 하는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는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알고 싶거나 아는 것이 없었지만 먹을 것을 주거나 특별한 교회 행사를 할 때면 친구의 교회에 몇 번 가 보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형교와 학교가 달라서 자주 만나지 못해 그저 아는 친구로만 지냈다.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 특별한 공감대가 없는 사이 말 그대로였다.
그러다 나와 형교는 우연찮게 같은 대학에 지원하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적잖게 놀랐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꽤 먼 거리인 경기도권 대학교에 지원했는데 함께 면접을 보러 가면 이 친구가 멀리서 나를 자주 지켜봐 주어서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평생의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평범한 관계에서 특별한 관계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같은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그렇게 반가웠던 이유는 이 아이가 나를 이해해 줄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형교는 나와 초등학교 때 친해진 보육원의 다른 친구들과 아는 사이라 보육원에 종종 놀러왔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보육원 놀이터에서 놀기고 하고 가끔 보육원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보육원생이 아닌 외부의 친구가 보육원에 자주 놀러왔다는 것이 별 일 아닐수도 있지만, 형교의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뭐 하러 보육원에 놀러 갔냐며 놀리거나 썩 좋은 시선으로는 바라보지 않았을 것도 같다. 내 기억으로도 내가 다른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간적은 있어도 내가 형교를 보육원에 데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보육원에 자주 놀러온 형교는 과연 보육원을 어떤 곳으로 생각했을까. 버려진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기보다 어린 마음에 마냥 노는 것이 좋아 방문하지 않았을까.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리 친하지 않았던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 후 27년이 지나 친해졌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형교가 신자로 등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 것이다. 나는 형교가 새 가족으로 교회에 잘 정착하도록 도와주면서 제수씨와 형교의 자녀들과 교류를 하였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종종 추억을 되새기곤 했다. 그렇게 추억을 나누며 다시 한번 인생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형교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쏟아낸다. 나는 초등학교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사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형교는 나의 과거를 너무나 자세히 기억하며 이야기해 놀란 적이 여러 번이다. 누구와 싸운 이야기,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난 이야기, 보육원 아이들의 사는 모습 등 형교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으론 부끄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했다. 내가 그다지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형교의 이야기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난 것처럼 어린 시절에 겪은 어려움과 아픔을 생각나게 하고 지금의 내 생활에 감사를 느끼게 했다. 형교는 내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론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서, 내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수준에서 재밌게 들려주었다. 만날 때마다 나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형교를 보면 이야기보따리 장수가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동식 디스크처럼 지난날 나의 모습을 저장해 놓은 디스크이니 얼마나 소중한 친구이겠는가. 나는 추억을 먹고 사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나쁜 추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그 자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한다. 그래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보육원 생활을 해본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후배들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하려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다.
그 누가 몇 십 년이나 지난 초등학교 친구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물론 형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형교는 내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든든한 내 인생의 후원자라는 사실이다. 보육원에서는 후원자님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는데 이젠 평생 후원자를 얻었기에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형교는 가장 먼저 사서 읽고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맨 처음 독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어떤 수식어보다 그냥 ‘멋지다!’라는 말 한마디로 내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책을 읽은 형교는 함께 다닌 초등학교 생각이 난다고 하며,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남자들끼리 무슨 뜻깊은 관계냐며 의심하기도 하겠지만 형교는 부모 없이 자란 내게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정말 고마운 친구이다.
친구는 중요하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친구란 중요한 차원을 넘어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존재다.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형교가 너무나 고맙다. 서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자녀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따뜻한 동행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자녀는 부모를 보며 자란다고 하는데, 나를 잘 이해해 주는 형교를 본 나의 아이들과 나를 바라보는 형교의 아이들은 분명히 형교와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의 길을 묵묵히 따라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친구)를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도 불현 듯 든다.
진형,
진형이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이다. 내가 있는 지역으로 진형이가 체육교사 발령을 받은 것이다. 진형이를 우연히 알게 되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돕고자 했던 것이 교회 등록으로 이어졌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만나 수업 논의도 하고 연구대회에 함께 출품하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는 동료 교사이다. 나보다 7살이나 어리지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른스러워 진형이와 나는 격의 없이 지낸다.
진형이를 많은 친구 중에서 두 번째로 소개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교직 생활 13년 만에 내가 보육원 출신임을 밝힌 첫 번째 동료 교사이기 때문이다. 독자분들이 앞의 글을 읽어보셨다면 내가 보육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딱히 숨기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자랑하지도 않는 것을 알 것이다. 동료 교사로서 함께 학교의 업무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무슨 마음으로 내가 보육원 퇴소생이라는 과거를 진형이에게 알렸을까, 여전히 의문이 든다. .
진형이는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했다. 그 사실을 알게된 나는 ‘이 사람이면 믿을 만하고 한편으로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숨기고 있었던 보육원 퇴소생이라는 과거를 처음으로 말하면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얼마나 힘들게 성장했는지를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어느 출신인지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등 개인의 사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두는 경향이 있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여러 활동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우리는 가족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면 거리를 두면 되겠지만, 인위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서로의 만남이 더욱 무미건조해 질 수 있기에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성장한 보육원을 소개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픈 기억,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숨기고자 했던 마음 속의 서러움과 응어리가 한 번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13년간 교직 생활을 하며 가까이 지낸 동료 교사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나알아봐 주세요. 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라고 알리고 싶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교사들과 수업 이야기 외에 부동산, 자녀 교육,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매번 부모님 이야기를 자주 했기에 나는 그냥 부모가 없다고 바로 알려주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교사가 결혼을 하는데 부모님께서 무엇을 주셨다는 둥, 휴일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왔다는 둥 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거짓으로 부모님은 사회복지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때 마다 성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싫었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진형이에게 내가 보육원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순간 나의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나보다 어린 동생에게 과거를 이야기했다는 것에 나 자신도 놀랐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되었고,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커밍아웃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
3년 전, 진형이가 근무하는 학교에 내가 자랐던 보육원의 학생이 입학했다. 가끔 진형이를 만날 때마다 그 아이를 잘 지도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는 진형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아이는 보육원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지 모르지만, 진형이는 나를 이해해 준 것처럼 그 아이도 잘 이해하고 바르게 이끌어 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형이를 떠올릴 때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가 굳이 보육원에서 성장했다는 과거를 고백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나를 인정해 줄 사람이 꼭 많을 필요는 없다. 긴 인생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믿어줄 때에는 과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속내를 진형이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나도 진형이를 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또한 진형이에게 관심 받고자 했던 마음은 오히려 진형이에게 관심을 더 기울이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너무나 놀라울 뿐이다.
사람이라면, 특히 직장인이라면 매일 8시간 동안 같은 직종의 사람들을 마주한다. 성인이 되어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기는 희박한 일이지만 참으로 의미가 있다. 나는 이것을 진형이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버젓한 직장에 다니더라도 누구나 숨겨진 아픔이 있기에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며,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형이는 내게 알려 주었다. 나는 진형이라는 또 한 명의 가족을 얻은 것 같다. 친형제처럼 서로 아껴주는 사이가 된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