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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을 퇴소한 이성남 장학사
Jan 13. 2024
보육원 아이들은 몇살 때 신세한탄을 할까
보육원생의 신세한탄
어른들은 가끔, 누군가에게 훈계나 조언의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한다. “너 그러다가 신세 조진다?”. 도박에 빠지거나, 외도를 저지르는 등의 매우 긴급하고, 또 부정적인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는 것 같다. 즉, 조언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그 말을 듣고 깊게 새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나름의 간절함에 사용하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로서, 신세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치는 일을 뜻한다.그 누가 삶을 살아가며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신세’는.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관계성를 의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부모든, 학교 선생님이든, 친구든, 저마다의 환경과 어울리며 살아가게 된다. 상술했듯 신세가 곧 관계를 의미한다면,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보육원생들은 몇 살 때부터 자신의 “신세”를 고민할까?
세상에는, 부모를 잘 만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정반대로 가정 폭력으로 괴로운 삶은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운명을 스스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특정 환경에서 성장하는 상황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주어진 처지를 바꾸려는자, 자신의 환경에 순응하며 맹목적으로 사는 자, 그리고 환경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 환경과 싸우는 자 등 사람마다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치관은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보육원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의 신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모가 없어 당하는 차별과 사회의 시선과 학교에서 당하는 불합리한 서러움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러한 생각과 경험이 그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갖게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나에게 항상 고민으로 남아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떨어져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은 왜 자신이 보육원에 들어갔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때리거나 이혼을 해서 보육원에 들어간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제대로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종종, 자신이 보육원에 들어가게 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갓난아기 때 보육원에 들어간 아이와 부모와 함께 살다가 보육원에 들어간 아이들의 생각이 또 다르다. 또한 아이들의 정신연령과 성향에 따라 부모에 대한 기억을 빨리 잊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를 원망하며 사는 아이들도 존재하는 등 아이들이 자신의 “신세”를 받아들이는 양상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아이들은 몇 살 즈음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모른 척 외면할까? 빠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니면 사춘기에 들어서는 때일 것이다. 사람이 다 다르듯,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그 신세한탄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다 다를 것이다. 또한 그 신세한탄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방식도 아이들마다 극명하게 다르다. 가출을 한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거나, 친구를 때린다거나, 말을 하지 않는 등이다. 마음 아프게도,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아이들도 있다.
신세한탄을 하는 아이들은 보육사와의 갈등도 잦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거나, 집단 생활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했을 때, 그들은 “내 마음대로 못해요.”, “내가 보육원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나무라요?”, “만약 내가 부모가 있었어도 날 그렇게 대하나요?” 등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보육사에게 소위 막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보육사들에게 있어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주고 싶은 마음을 잃게 만드는 계기가 되니 나로서는 참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사실 이러한 신세한탄이 여느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특별히 부정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신세한탄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며,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능력과 그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고민을 통해, 아이들은 더욱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겪지 못하는 부모와 떨어진 삶을 통해 새로운 나만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끈질긴 삶의 태도가 보호아동들을 더 성장시키기도 할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갖는다면 성장하면서 누구에게도 인정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과연 신세한탄을 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조언을 해 줘야 할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보통의 어른들이나 보육사들은 주로 부모와 함께 성장했기에 부모가 없는 삶은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반대로 보육원 출신의 복지사들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선다. 가령, 보육원 후배 중 사회복지사를 보육사를 하는 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자신이 맡은 일을 너무나 잘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보육원생들의 삶이 같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보육원생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 동생을 더 의지했다. 다만 부모가 없는 보육원출신 보육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보육원생들이 다 보육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보육사들은 아이들의 신세한탄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의 태도와 삶의 방식이 갑자기 달라졌다고 하여 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앞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곧 성인이 되면 어른으로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도 다 행복한 것은 아니며 그들 역시 인생의 방황을 많이 한다는 조언을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보육사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도록, 이를 통해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
보육원생 역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받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보육원 선배가 신세한탄을 한다고 하여 이를 답습하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과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사는 삶은 분명 어느 정도 다르다고 인지하고 끝없는 자기노력을 실천해야만 한다. 최근 들어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보육원생들의 자기계발을 위해 학업과 관련과 학원이나 기술학원과 관련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도 본인이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그러니 부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며, 미래를 스스로 자신있게 설계해 나가도록 노력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