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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를 채워주자. 부모라는 이름의.

빈자리를 채워주자부모라는 이름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아라.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 무엇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세상을 구성하는 주요 인원은 “힘든 사람‘이다. 다만 그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이들은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이다. 당연히 가졌어야 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빈자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보육사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 주기 위해 갓난 아이들은 자주 안아주고, 아동기가 되면 많은 칭찬을 해주고, 청소년기가 되면 수없는 배려를 실천한다. 또한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없는 자신의 금전, 시간을 내서 보육원으로 발걸음을 찾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보호아동을 만날 때면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 빈자리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빈자리 마음의 빈자리가 되곤 한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 알고 칭찬받은 사람이 칭찬할 줄 안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닐 것이다. 그 당연한 것, 세상의 이치에 맞는 부모라는 존재. 그 결핍으로 인해 마음에 어딘가 부족함이 생기는 것이다. 


부모의 빈자리는 마음의 빈자리뿐 아니라 인생의, 시간의 빈자리로 다가온다. 부모가 없어 내 인생을 살고 싶은데 자신이 바라는 인생을 살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나의 보호자입니다.“ 


한 자립준비청년이 남긴 말이다.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스스로의 보호자 역할을 한 그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갖지 못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이 누려야할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 빈자리가 하나의 온전한 인생을 망가뜨린다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부모의 빈자리는 관계의 빈자리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사업가이면, 자녀는 사업은 하는데 일단 50점은 얻게 된다. 세상에서는 소위 인맥이 그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변호사인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학교폭력이 두려울 리가 없으리라. 이처럼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자식은 부모의 덕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결국 부모의 존재는 아이들의 인생에 큰 관계적 이점으로 다가온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지만 말이다. 


어떻게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까? 먼저 정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인정과 사랑의 말을 통해 스스로 자긍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라는 말은 어쩌면 무섭지만, 자립을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필연적인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는 보육시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고민,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보육시설에 방문하는 등의 실천을 꼽을 수 있겠다.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 복지국가의 국민이자 한 명의 어른으로서, 끝내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고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가져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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