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해보인다.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불쌍해보인다.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아내가 TV속의 한 자립준비청년의 인터뷰를 보고 한 말이다. (웃음) 그 말을 듣고, 나는 솔직히 놀랐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편으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20년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결혼을 한 것은 아닌지 내심 고민했다. 물론 아내의 마음의 근원은 사랑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던 나의 인생스토리, 아내는 훤히 다 알고 이해하지만, 정작 나는 아내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TV속의 그 청년은, 자신이 불쌍하게 보여진다는 것을 알까?
그 생각은 아내만의 마음일까? 다른 이들은 그 청년들 바라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수많은 단체에서 시행하는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장학금을 받는 자립준비청년들은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참석한 내빈들의 표정은 늘 다소 긴장해 있다. 왜 그럴까? 수여자들을 애처롭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겪어 본 나는, 알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떠한 측면에서는, 우리가 공유하는 아픔의 프레임이 있어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후원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 아이들이, 우리가,
무슨 죄로 불쌍하게 보여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한 단체에서 장학금사업이 있었다. 한 청년은 신청서를 작성해 보냈는데 그 단체에서는 보다 더 힘들다는 내용을 첨가하라고 했단다. 청년이 적어 낸 삶의 고충은 대학생활이었다. 단체의 소견은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어느 보육원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그래야 더 후원 대상으로서의 경쟁력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청년은 비굴해져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에 한탄을 했으리라. 더 불쌍하기 경쟁이라니.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이 맞는 걸까?
나는 문득 이 모든 생각을 떠오르게 해준, 그 TV속 청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불쌍하게 보인다고들 해요. 그 말을 듣게된 청년은 어떤 마음이 들까? 어쩌면 정말 자신의 인생을 비관할지도 모른다. 나도 여러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과연 시청자들은 어떻게 나를 바라봤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은 프레임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 청년들을 바라봐야 한다. 보호아동인식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잘못한 생각이라고 누구나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학사로 성장한 나 이외에, 보육원 출신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든다.
불쌍하다가 아니다.
너희가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으니, 우리가 돕겠다.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프레임은 접어두고, 본질을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