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보육원 출신이다. 그렇다면, ‘보육원 출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부모의 곁에서 자라지 못한 이들을 뜻한다. 부모 없이 자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우리가 당연히 친부모와 함께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육원 출신’을 낯설게 받아들이며, 때로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적 범죄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하지만 ‘보육원 출신’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출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는 특정 지역, 계층, 가문, 학력 등, 다양한 배경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빈번하게 이뤄진다. 이는 아마도 ‘출신’을 소개하는 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드러낼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보육원이나 교도소와 같은 배경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거론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들은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보육원 출신은 사회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역마다 여러 시설이 존재하지만,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부모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편견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최상위 계층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한 보육원 출신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는 고아 출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나는 보육원에서 자란 만큼, 자연스럽게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겪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동생들은 비록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퇴소 후에도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다른 보육원 출신인 이들도, ‘버려졌다’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보육원 출신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나도 가슴이 아프고, 그들이 결혼할 때에는 마치 내가 결혼한 것처럼 기쁨을 느낀다. 예기치 않게 하늘나라로 간 후배들을 떠올리면, 그 슬픔이 깊이 스며든다. 다른 보육원 출신을 후배로 여기며 마음을 쏟는 것은 과연 부당한 일일까? 그들의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일까?
최근 명절에 천애 고아인 후배를 만났다. 그 동생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친구이다.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이따금 어딘가 부족한 면이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자주 사기를 당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들이기도 한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기술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 후배를 보며, 그의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큰 역할을 해줄 수는 없지만, 가끔이라도 밥을 사주며 “형으로서 그의 보호자가 되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도 든다. 혈육은 아니지만 같은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인연만으로도 나는 그들에게 큰 애정을 갖게 된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보육원 출신을 다른 출신에 빗대어 이야기해볼까 한다. 만약 내가 외고 출신이라면 대학교에서 외고 출신을 만났을 때 아마도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같은 지역 출신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을 것이다. 교정시설 출신들도 서로를 만나면 왠지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난 사람이 다른 보육원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과장된 표현도, 지나친 관심의 결과도 아닐 것이다.
반면에, 같은 시설에서 자란 후배들이 나를 멀리할 수도 있다. 나는 아직 보육원 출신인 것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괜한 부담과 오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다. 같은 보육원 출신 동생들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간섭으로 느껴질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선배가 뭔데!”라며 내 관심을 무시하거나 반박할 수도 있다. 그들이 보육원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퇴소 후의 선후배 관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육원 출신들끼리라도 서로 돕지 않으면 이 땅의 많은 고아들이 올바르게 자립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혼자서 돈을 버는 일은 가능할지 몰라도, 마음이 외로울 때는 퇴소생이 가장 먼저 다가와 가장 큰 위로를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 아니더라도 고아라면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형제처럼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아로서 먼저 그 길을 걸어왔기에, 그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결혼하고, 한 가정의 부모가 되기까지, 누군가의 도움과 지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땅의 모든 보육원생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형이 되고자 다짐해 본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없었기에, 보육원 출신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