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케어링 노트는 나에게 즐거운 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은 내가 재능봉사의 일환으로 진행한 '약사를 위한 복약상담 기록 서비스, 케어링 노트'를 만들고 팀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배운 점들이다.
나는 실무 경험이 많지 않다. 이전에 사이드로 서비스를 두세 번 리딩해서 만들었던 경험은 있지만, 노하우로 가득 찬 베테랑 팀장에 준하는 지혜는 없었다. 하지만 매 순간 나와 팀에게 닥친 문제를 최선을 다해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팀’이라는 유기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모으고, 그 안의 다이내믹을 이해하고, 개개인을 파악하고, 이들이 합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사이즈를 산정하고,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적합한 사이즈로 태스크를 나누어 갖는 일. 각자는 태스크의 수장이 되어서 자율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조화롭게 엮어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일. 팀 플레이는 이러한 것들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매번 잘 파악하고 그때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실행해 보는 것이 뻔하게 느껴지지만 정답에 가까운 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사람이 전부다’라는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다. 팀원 모집 공고를 쓰고 총 28명의 지원자를 받고는 어떤 사람과 함께 할지 고민을 했던 당시의 나에게 다시 돌아가서 조언을 한다면 개인의 역량, 참여 계기, 주인의식을 꼭 봐야 한다고 말해줄 것 같다. 우선 역량은 필수조건이었다. 시간 내에 팀에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면서 워킹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프로젝트 진척에 정말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참여 계기이다. 특히나 본업이 아닌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한다면, 참여자 개개인에게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프로젝트 자체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그 의미를 잃어버리면 바로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로 한 팀원은 케어링 노트를 하나의 취업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직을 성공하고 나니 회의에 참석하지 않더니 잠수 타고 본인이 벌여 놓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고 떠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프로젝트와 팀에 애정을 붙이도록 해서 ‘수단’을 ‘목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는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팀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진지한 마음으로 해결책을 강구하고 머리를 맞대어줄 든든한 동료가 생긴다. 실제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몇 번씩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다 보면, 서로 두터운 믿음이 생겨서 어떤 상황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자신감이 생긴다. 이런 게 팀의 안정감이구나 생각했다. 이러한 요소들을 꼼꼼히 따져서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프로젝트는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기간 동안 그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고마워하고, 두 손 모아 응원했다. 금전적인 보상은 줄 수 없었지만, ‘내가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수고를 빛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자주 고민했다. 순전히 마음이 동해서 하는 일이었다.
업무적으로는 개개인을 들여다 보고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LLM에 관심 있는 분은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브랜딩에 관심 있다면 해당 요소의 비중을 키워서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일하면서 더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비업무적으로는 때로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나 치어리더처럼 행동했던 기억도 있다. 척박한 프로젝트 상황을 조금이라도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다.
함께 모여서 작당모의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성장과 의미를 찾아가며 일했던 이 시절은 몸은 힘들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아마도 우린 프로젝트가 끝나도 연락하며 지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팩트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한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다. 함께 했던 비영리 약사조직 ‘늘픔가치’가 평소에 잘 쌓아둔 선한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일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료정보보호 자문을 받았을 때였다. 케어링 노트는 환자의 민감한 개인 의료 정보를 취급하기 때문에 법률 자문이 필수적이었다. 난생처음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머리를 쥐어뜯었는데, 늘픔가치 대표님의 지인이었던 이변호사님이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펠로우 님} 일이라면 내가 도와야지”라고 호탕하게 말하며 친절한 삼촌처럼 대해주셨다. 또한 늘픔가치는 케어링 노트 서비스 사용을 위해 장비 구입 펀딩을 진행했는데, 모금 6시간 만에 펀딩 금액을 초과 달성했다. 열심히 일하고 내돈내산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나는 이런 것들이 신기했다. 실로 돕고 사는 삶의 현장을 바라본 듯했다.
임팩트 사업자들과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나눔의 가치를 아는 진지한 분들이었는데, 사회적인 미션을 기반으로 업을 택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션 기반의 원동력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숭고하면서도 진한 열정을 담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이를 계기로 프로덕트 만드는 사람으로서, 결국 내가 시간을 기울여 만드는 이 프로덕트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우여곡절 많고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도하고, 또 성찰하면서 많이 배웠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팀빌딩 과정에서는 사람들을 알아가며 체계를 만들며 소프트 스킬을 길렀다. 이후로는 직접 복약상담소 현장으로 나가 유저 리서치를 진행하고, 현장의 어려움을 발굴하고 프로덕트 방향성과 형태를 선정하며 기획 역량을 단단하게 키웠다. 이후 디자이너 동료들과 합을 맞춰 화면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로직 설계와 화면 기획 및 디자인을 단기간 내에 설계하는 연습을 했다. 맨땅에 복약상담 메인 플로우를 2주 만에 화면설계까지 컴포넌트 시스템 구축을 병행하며 마쳤던 엄청난 일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구현 단계에서는 MVP, 우선순위 선정, 개발 공수 최적화를 고민하며 추진해 나가는 PM 스킬 셋을 길렀다. 항상 개발자들과 일해왔지만 새삼 그들의 문화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밀접해지면서 개발 씬의 코웍 문화, 최신 기술의 중요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본업을 절대 소홀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사이드를 2순위로 두고 작업을 행했는데, 빠른 템포 속에서 스트레스 관리와 시간 효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PM과 기획/디자인 영역을 넘나들면서 한정된 시간 내에 핵심을 지키는 탄탄한 프로덕트를 만드는데 즐거움을 느꼈던 시기였다.
매 순간 후회 없이 쏟아붓고, 내가 가진 최선의 선택을 내리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20대 마지막으로 한 도전은 후회가 없었다.
힘들지 않냐고 동료가 캐모마일 티를 선물해 줄 때, 정말이지 깐깐하고 기준 높은 동료가 나를 좋게 봐주는 글을 읽었을 때, 엔드 유저인 약사님이 프로덕트를 보고 한창 상기된 톤으로 감사를 표할 때, 동료와 해커톤처럼 새벽 3시까지 작업할 때, 고생 실컷 하고 최종 공유회 마무리 후 동료들과 밤 10시에 시원한 맥주마실 때. 이런 순간들이 잔뜩 힘들어갔던 나에게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