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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07. 2022

<틱틱붐> 더 자세히 보기: (1) 메가뮤지컬의 시대

린 마누엘 미란다 감독,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틱틱붐>은 뮤지컬을 만드느라 고분군투하는 작곡가 조나단의 이야기입니다. 극중에는 주인공 조나단이 '요즘 뮤지컬은 너무 상업적'이라고 비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 뒤로는 뮤지컬 <캣츠> 오디션장이 스쳐가고요. 이 장면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봐도 거대 자본이 투입된 상업예술과 관객의 입맛에 맞춘 대중예술에 대한 비판, 순수한 예술가로서 조나단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라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80~9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업계의 흐름을 알면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틱틱붐>의 극중 배경은 90년대 초반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조나단이 이야기하는 대로 1990년 1월 26일이요. 그런데 80년대 브로드웨이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바로 '메가뮤지컬(megamusical)이라는 개념의 등장입니다. 메가뮤지컬은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진: Matthew Murphy)

이런 것,


뮤지컬 <캣츠> (사진: Geraint Lewis/Alamy)

이런 것, 


뮤지컬 <위키드> (사진: Matt Crockett)

이런 것이요.


예시로 든 작품의 사진만으로도 어느정도 감이 오실 텐데요. 쉽게 설명하자면 메가뮤지컬은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겁니다. 눈과 귀와 오감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스케일 큰 종합관광상품 같은 뮤지컬이요. 실제로 메가뮤지컬을 블록버스터 뮤지컬이나 스펙타클 뮤지컬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스케일이 크고 인기가 많다고 다 메가뮤지컬인 것은 아닙니다. 메가뮤지컬에는 '스펙타클'이 있어야 해요. 관객에게 최대한의 스펙타클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작품. 그래서 일반적으로 메가뮤지컬의 특징으로는 많은 출연진, 화려한 무대장치와 시각효과, 웅장한 합창, 귀에 잘 꽂히는 멜로디, 드라마틱한 줄거리 등을 꼽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을 갖춘 작품을 만드는 건 곧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메가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은 그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다 회수하고도 남을 만큼 수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메가뮤지컬은 반드시 히트를 쳐야 합니다. 히트를 치려면 관객들의 취향에 맞는 대중적인 작품이어야 하고, 마케팅에도 돈을 쏟아붓는 상업예술이어야 하고요. 예술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기 있고 대중성 있는 작품이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메가뮤지컬은 평론가들이나 예술가들이 혹평을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관객들이 보러 오기만 하면 되거든요.


이런 이유 때문에 메가뮤지컬은 전세계적으로 프랜차이즈처럼 라이센스가 팔려나간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오페라의 유령> 같은 경우는 전세계 41개국, 183개 도시에서 공연된 바 있죠. 이 때문에 메가뮤지컬을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에 빗대서 비꼬는 말로 '맥뮤지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80년대는 이런 메가뮤지컬의 시대였습니다. 1981년에 나온 <캣츠>를 시작으로 해서 <오페라의 유령(1986)>, <레미제라블(1985)>,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1984)>, <미스 사이공(1989)> 등 수많은 메가뮤지컬들이 80년대에 쏟아져 나왔어요. 이 흐름을 가장 두드러지게 주도한 것이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대표작: 오페라의 유령,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선셋대로 등)와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 등 제작)입니다. 특히 카메론 매킨토시는 뮤지컬의 상업화, 대중화 면에서 뮤지컬을 하나의 '상품'으로서 브랜딩하고 시장 규모를 확장하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매킨토시는 아직도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이고요. 사실 프로듀서가 작품 전체에 대한 큰 권한을 갖고 작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게 된 것도 <캣츠>부터입니다.


매킨토시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이끈 80년대 이후, 90년대에는 디즈니를 비롯한 많은 제작사들과 기업들이 뮤지컬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디즈니는 90년대에 <라이언킹>, <미녀와 야수>, <아이다> 같은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또다른 메가뮤지컬 흐름을 만들어냈어요. 지금도 디즈니는 <알라딘>,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블록버스터 뮤지컬들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가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대단히 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평론가들과 예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관객몰이를 위한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깊이 있는 메세지를 주지 못한다는 이유,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인디 작품들이 주목이나 투자를 못 받게 된다는 이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 안전한 소재들과 흥행 요소들을 되풀이해 사용하며 예술성과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등...


<틱틱붐>에서도 조나단 라슨이 추구하던 방향성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작품으로 <캣츠>가 등장합니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Play Game"이라는 노래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타임스퀘어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추해졌"고, 공연은 전부 다 "눈요기에 눈속임"이고, "혁신이 부족"하며 "화려하고 유명하기만 하다"고 길거리 뮤지션의 입을 빌려 비판하죠. 노래가 나오는 동안 뒷배경에는 '메가뮤지컬'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조나단은 캣츠 오디션장이라고 쓰여 있는 문 앞을 지나쳐 걸어갑니다. 목소리 높여 비판하던 길거리 뮤지션은 <캣츠> 오디션을 보러 가고요.


<틱틱붐>의 한 장면(Play Game). 뒤쪽에 British Mega Musical이라고 쓰인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틱틱붐>의 한 장면(Play Game). <캣츠> 오디션장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틱틱붐>의 한 장면(Play Game). 메가뮤지컬을 비판하던 길거리 뮤지션은 <캣츠>의 '올드 듀터로노미' 캐릭터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당시 메가뮤지컬 장르가 휩쓴 뮤지컬 업계와 그 점을 싫어하던 조나단 라슨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메가뮤지컬 중에서도 하필 <캣츠>가 직접적으로 등장한 이유는 이 작품이 메가뮤지컬 붐의 시초와도 같은 상징적인 작품이기 때문일 테고요. 또 <캣츠>는 같은 메가뮤지컬이라도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들과는 달리 기승전결이 있는 줄거리가 아예 부재하고(고양이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지는 것이 거의 전부니까요) 화려한 춤과 볼거리로만 짜여져 있다는 특징을 가진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 때문에 아직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하고요.


조나단 라슨은 뮤지컬이 혁신적이길 원했고, 뮤지컬이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멜로드라마나 고전극이 아니길 바랐으며, 우리 주변의 평범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조나단에게 <캣츠>가 좋게 보였을 수는 없었겠죠.


재미있는 점은, 이런 초히트 메가뮤지컬의 흐름 속에서 갑자기 등장해서 뮤지컬의 이미지와 문화를 영원히, 영원히 바꿔놓은 작품이 바로 조나단 라슨의 <렌트>라는 점입니다. 



다음 편인 <틱틱붐> 더 자세히 보기: (2) 렌트와 렌트헤즈에서 <렌트>가 브로드웨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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