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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Sep 26. 2022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리는 이유는?

35년만에 폐막하는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

얼마 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린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88년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뒤, 무려 35년간이나 공연을 지속해 오며 브로드웨이의 상징, 더 나아가 뉴욕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뮤지컬이자,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이 영영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영원히 Majestic Theatre를 빛내고 있을 것만 같던 <오페라의 유령>이 막을 내리는 걸까요?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약 2년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극장들이 전면적인 폐쇄 조치를 시행할 당시로요. 전 세계가 코로나로 들썩이던 2020년 7월 즈음, <오페라의 유령>의 폐막 여부를 놓고 업계가 떠들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웨스트엔드 <오페라의 유령>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존속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했었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완전한 폐막이 아니라, 극장 보수 공사 및 극장 재오픈까지의 재정적 문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프로덕션을 중단 상태로 돌린다는 의미로 결론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오페라의 유령>의 팬들을 불안하게 했던 발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존속 문제였는데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페라의 유령>의 연출은 몇몇 마이너한 변화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하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매킨토시가 "이제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끝났다", "새로운 버전으로 문을 연다"와 같은 언급을 하면서 마리아 비욘슨이 디자인한 무대 세트와 의상 등을 포함해서 <오페라의 유령>의 연출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닌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매킨토시는 이미 <레미제라블>의 회전 무대, <미스 사이공>의 헬리콥터 세트 등 작품의 상징과도 같았던 연출을 갈아엎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가 컸었죠.


이러한 우려는 몇 달 뒤인 2021년 4월, 웨스트엔드 극장들이 재오픈하기 시작하면서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웨스트엔드 <오페라의 유령>의 오케스트라 인원을 27인조에서 14인조로 감축하겠다는 공식 발표가 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세스 루뎃스키를 비롯한 많은 뮤지컬 업계 관계자들이 이 결정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지만, 오케스트라 인원을 절반 정도로 감축하겠다는 이 결정은 끝내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프로시니엄과 샹들리에, 천사상 세트 등 무대 디자인 일부가 바뀌었고, 연출에도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대부분 공연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요.


그런데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다고 여겼던 부분은 이 변화들이 브로드웨이 <오페라의 유령>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버전의 오케스트라 인원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대사와 연출에 조금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웨스트엔드 버전에 비하면 눈에 띌 만한 큰 변화는 별로 없었거든요. 만약 웨스트엔드의 변화들이 비용 문제라면 브로드웨이의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똑같은 변화를 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니 의아할 수밖에요.


그리고 2022년 9월, 브로드웨이의 <오페라의 유령>의 폐막이 결정되었습니다. 웨스트엔드의 <오페라의 유령>은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에요.



사실, 지난 약 일 년간 브로드웨이 <오페라의 유령>의 수익과 좌석 점유율을 보면, 폐막 결정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작년 10월 재오픈한 이후 그다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거든요. 브로드웨이 리그가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오페라의 유령>의 주간 수익은 평균적으로 약 1백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로 낮았습니다. Majestic Theatre 정도 규모의 극장이라면 티켓 판매율이 좋을 경우 3백만 달러 정도의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또 뉴욕포스트는 재오픈 이후 브로드웨이 <오페라의 유령>이 매달 1백만 달러 수준의 적자를 내고 있다고 보도한 적도 있죠.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떼어놓고 보더라도, <오페라의 유령>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좌석점유율을 보면 <오페라의 유령>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가 잘 보입니다. 조금 더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끔 그래프로 정리해 보았는데요. 다음 그래프는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에서 재오픈한 2021년 10월 넷째 주부터 지난주인 2022년 9월 셋째 주까지의 좌석 점유율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원래 극장가 판매율이 크게 떨어지는 시기인 1월을 제외하더라도, 좌석 점유율이 80% 이상인 주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빨간색 선으로 표시한 것은 재오픈 이후 평균 좌석 점유율인데, 74.6%으로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재오픈 이후, <오페라의 유령>의 좌석점유율(%)을 정리한 그래프 (원본 데이터 제공: The Broadway League)



70~80% 수준이면 꽤 괜찮은 성적 아니냐고요? 안타깝게도, 브로드웨이는 아주 냉정한 시장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리지 않고 오픈런으로 공연하려면 최소한 85% 정도의 좌석 점유율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어떤 작품인지와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객석의 85% 이상을 채운 작품만이 계속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은 최근 1년간 이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 하반기 성적은 거의 뒤에서 4~5번째 수준으로 정말 위태로웠고요.


<오페라의 유령>보다 낮거나 비슷한 좌석 점유율 및 수익을 기록했던 <디어 에반 핸슨>, <컴퍼니>, <비틀쥬스>와 같은 작품들도 최근 막을 내렸거나 폐막 결정을 내렸습니다. <디어 에반 핸슨> 처럼 여러모로 큰 화제를 불러왔던 작품이고 곧바로 영화화까지 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도, <컴퍼니>처럼 유명 작품에 유명 배우가 출연한 경우였어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오픈런 공연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뜻인 거죠. 그러니까 시장 논리에 따르면 브로드웨이 <오페라의 유령>의 폐막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공연 유지비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아주 높다는 점도 악수로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 자체를 공연하는 비용이 타 뮤지컬에 비해 아주 높거든요. 35년째 공연 중인 <오페라의 유령>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장수 뮤지컬인 <시카고>와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시카고>는 1996년 리바이벌된 이후로 25년간 공연 중인데요, <시카고>의 무대는 큰 변화 없는 거의 단일 세트로 유지됩니다. 의상도 많이 갈아입지 않고, 조명과 무대효과, 소품, 가발 등도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 편이고, 앙상블 배우들과 라이브 연주자들의 숫자도 적습니다.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은 어떨까요? 매 공연마다 200벌이 넘는 의상과 150개 정도의 가발이 필요하고, 무대 세트 전환도 여러 번이며, 다양한 무대 효과를 사용하고, 스윙과 얼터네이트 배우들을 포함해서 50여 명이 넘는 출연진이 필요하고, 오케스트라 인원도 27인조로 많죠. 처음부터 시각적, 청각적인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메가 뮤지컬이기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은 무대에 올리기에 정말 '비싼' 뮤지컬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매킨토시가 몇 번씩이나 리스테이지 버전과 같은 시도를 하면서 <오페라의 유령>을 '좀 저렴하게' 만들어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고요.


현재 호주에서 공연 중인 리스테이지 버전 <오페라의 유령> (© Daniel Boud)


또, <오페라의 유령>은 단기간에 수익을 크게 올리기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명한 스타를 고용해서 마케팅을 하는 것인데,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 특성상 유명한 영화배우나 TV 스타, 인기 가수 등을 캐스팅하기 쉽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시카고>와 비교해 보면, <시카고>는 얼마 전에 파멜라 앤더슨을 록시 역할로 캐스팅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파멜라 앤더슨의 이미지와 극중 캐릭터가 잘 어우러져 시너지를 냈던 스타 마케팅이었죠.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워낙 정형화된 스타일이 있다 보니 스타의 이미지를 작품 속으로 끌고 오기가 어렵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오페라의 유령>은 주연 배우들에게 훨씬 더 고난이도의 연기력과 가창력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주인공 크리스틴의 경우 반드시 성악 발성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중에서도 넓은 음역을 가져야 하며, 연기력도 출중해야 합니다. 팬텀 배우도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배역 리스트에 꼽힐 만큼 노래, 연기 면에서 소화하기 어렵고요. 이렇다 보니 <오페라의 유령>은 트레이닝을 받은 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주로 연기할 수밖에 없고, 수익 부스팅을 위한 스타 마케팅이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물론, 수익이 모든 예술 작품의 판도를 결정짓는 요인은 아닙니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처럼 상징적인 작품이라면, 시장 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와 퀄리티를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뮤지컬은 오래 전부터 상업예술의 극치를 달리는 분야였고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메가뮤지컬은 특히 그 상업성이 두드러지는 장르입니다. 아무리 브로드웨이의 상징이 되었다고 해도, 또 아무리 그 작품을 애정하는 팬들이 많다고 해도, 계속해서 적자가 나면 더 이상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거죠.



<오페라의 유령>의 팬으로서 이 작품의 폐막 소식을 접하고 정말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뮤지컬 하나의 위기가 아니라, 극장 산업 전체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읽히기도 해서 더 그랬고요. 그런데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는 한편, 냉정하게 바라보면 <오페라의 유령>이 이제 막을 내릴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코로나19로 인한 이전에도 꾸준히 <오페라의 유령>의 퀄리티 문제와 지나친 랜드마크화 문제는 지적되어 왔으니까요. 어쩌면 지금이 공연을 잠깐 중단하고, 한번 리프레시를 거친 뒤에 새롭게 돌아올 적기일지도 모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좋은 극장 중 하나인 Majestic Theatre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위해서 비워 주고요. 어쩌면 몇 년 뒤, 다른 극장에서 크나큰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재공연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연 <오페라의 유령>의 제작진들이 공연을 지속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라민 카림루가 브로드웨이에 팬텀 역으로 컴백한다면요? 전 세계의 Phan(<오페라의 유령>의 팬덤을 뜻하는 말)들이 몰려와 아마 객석은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찰 겁니다. 아니면, 조쉬 그로반이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팬텀 역할로 캐스팅한다면요? 대중들 사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고 티켓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지 않을까요? 또는, 팬텀 역할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어떨까요? 첫 번째 여성 팬텀을 보러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의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관객층을 확장하는 방법은요?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텐데, 왜 <오페라의 유령> 제작진들은 이런 마케팅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워요. <오페라의 유령>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살려내기 위해서 모든 시도를 다 해보지 않았다고 느껴진다는 점이요.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값비싼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내리고, 대신 보다 저렴한 새 버전을 올리기 위해 일부러 계획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해요. 앞서 이야기한 대로 브로드웨이 버전에는 웨스트엔드 버전처럼 프로덕션 비용을 낮추기 위한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것, 그리고 이제 브로드웨이 버전의 폐막이 결정났다는 것, 그리고 폐막 발표를 하기 전에 수익 부스팅을 위해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이 모든 흐름이 결국 예전부터 매킨토시가 시도했던 대로 <오페라의 유령>을 조금 더 '값싸게' 만들기 위한 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개인적으로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오페라의 유령>이 올해가 아니라 내년 2월에 막을 내리게 되면서 35주년 기념일은 지나고 폐막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갑작스럽게 11월~12월 정도에 막을 내렸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낮은 판매율로 인한 수익 저하를 이유로 불명예스럽게 폐막하게 되겠죠. 하지만 2023년 2월, 작품의 브로드웨이 초연 35주년 기념일(2023년 1월 26일) 이후에 막을 내리게 되면서, 슬프고 안타까운 폐막이 아니라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이 35주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고 나서 자리를 비켜 주는 느낌으로 명예롭게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팬으로서 이 점만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페라의 유령> 공식 SNS 계정이 폐막 소식을 전하며 업로드한 사진.



그렇다면 이제 <오페라의 유령>은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브로드웨이에서는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아닐 것 같아요. 앞서 예측해본 것처럼 아마 연출이나 작품의 스케일 등을 좀 수정해서 변화가 들어간 버전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매킨토시도 <오페라의 유령>이 브로드웨이에 돌아올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으니까요. 다만 이렇게 돌아온 <오페라의 유령>이 과연 예전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또 과연 예전처럼 대중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걱정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페라의 유령>의 폐막 결정이 철회될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약간은 있다고 생각해요. <오페라의 유령> 출연배우들은 폐막 소식 발표 이후로 SNS 등을 통해서 폐막 전까지 최대한 많이 보러 와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만약 이 기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공연이 연장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지금부터 내년 2월까지 <오페라의 유령>의 좌석 점유율이 90% 중후반 수준까지 치솟는다면,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뮤지컬을 사랑하고, 브로드웨이에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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