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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15. 2023

[D-17] 가시는 양쪽으로 자란다

349번째 글

유튜브나 SNS, 뉴스 기사 등을 볼 때 나는 웬만해서는 댓글을 보지 않는다. 그렇게 한 지 꽤 오래되었다.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아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댓글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날이 서 있고, 흥분해 있고, 화가 나 있고, 짜증이 가득하고, 극단적으로 말한다. 그런 반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할 때가 아니면 굳이 댓글 창을 열어보지 않게 된다. 가끔씩 댓글을 찾아 읽거나 스치듯이 보게 될 때도 괜히 봤다고 후회하곤 하고.


그런 날이 선 댓글들을 볼 때마다 나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기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얼마나 여유가 없으면, 얼마나 삶이 팍팍하면, 이렇게 인터넷 댓글에서 꼬투리를 잡아 화를 내고 싸움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다.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그냥 마음이 안 좋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나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게, 그게 이렇게 인터넷상에서 티가 난다는 게 속상하고 슬프다.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댓글 창에서 화가 나 있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많이 공감이 된다. 나 역시도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아주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었고, 그러다 보니 공격적이고 다혈질적인 면모를 비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악플을 달아본 적은 없지만, 당시에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쳐 있었다. 그땐 누군가 내게 무슨 말을 하면 화가 났었다. 그 사람의 의도는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맥락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격적으로 반응하곤 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도 있듯이 나는 그렇게 공격을 하면서 나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려 했었다. 그렇게 가시를 두르고 살면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어느 정도 되찾고 난 지금은 안다. 그게 잘못된 믿음이라는 걸. 가시를 두르고 몸을 웅크리고 늘 공격 태세를 취하는 건 결코 나를 안전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 내 몸에서 가시를 키워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시는 밖으로만 향하는 게 아니었다. 가시는 안과 밖 양쪽으로 자라고 있었다. 내가 가시를 더 크게, 더 많이 돋아낼수록 가시는 내 피부 안쪽으로도 돋아나 파고들었다. 내가 가시를 더 길고 더 날카롭게 벼릴수록 나를 찌르는 가시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꼬아 듣고, 맹목적으로 공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쉽다. 가시 돋친 말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건 쉽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댓글을 달면 달수록 가장 많이 상처받는 건 바로 댓글을 다는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 댓글을 가장 먼저 보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 댓글에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내 가시는 밖으로만 자랄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안쪽으로도 자라나서 나를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이 괴롭고 힘들어 가시 돋친 댓글을 쓰고야 마는 사람들이 안정감을 찾고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날이 서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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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5일,
침대에 기대앉아 창 밖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Dominik Kempf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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