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Dec 19. 2023

[D-13] 예상 밖의 순간들

353번째 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 사람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냉정한 성격에 과묵한 타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린아이에게는 밝게 웃어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을 볼 때라던지, 늘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냉철한 결단력을 보여줄 때라던지. 아니면 사소하게는 늘 무채색 옷만 입던 사람이 선명한 노란색의 옷을 입고 왔을 때. 이럴 때는 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의외의 모습, 예상 밖의 모습들은 늘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을 즐겁게 해 주는 것 역시 예상 밖의 순간들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 인생의 색깔은 다채로워진다. 늘 가던 식당의 늘 먹던 메뉴가 마침 그날 품절되어서, 할 수 없이 시켜 먹은 다른 메뉴가 생각보다 맛있었을 때. 여행지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변경한 일정이 정말 재미있었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과 어색하게 대화하다가 친구가 되었을 때. 채널을 돌리다가 본,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영화가 취향에 맞았을 때. 똑같은 일상에 변화가 주어졌을 때. 이럴 때 설레는 마음과 기분 좋은 미소가 함께 찾아오곤 한다.


물론, 예상 밖의 순간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이건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생존 본능이다. 우리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돌발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모든 일이 예상한 대로 딱 맞아떨어져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또 우리는 놀라운 기쁨이 우리를 찾아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놀라운 기쁨은 늘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 언제나 예상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상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이미 그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면 기쁨의 양이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나를 가장 기쁘게 해 주었던 순간들은 예상치 못하게 벌어진 기대하지 못했던 이벤트들이다.


전에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재래시장 구석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뱅쇼를 사 마신 적이 있다. 평소라면 나는 당연히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뱅쇼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달짝지근한 맛의 음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충동적으로 뱅쇼를 주문했다. 그 뱅쇼는 내 입맛에 맞았다. 예상 밖으로. 그리고 그 뱅쇼는 내가 제주도에서 먹어 본 것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 중 하나로 남았다. 분명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굳이 사 마신 그 예상 밖의 행동이 내게 놀라운 경험을 안겨주었던 거다. 이런 뜻밖의 행동들, 기대하지 못했던 예상 밖의 순간들이 내 인생을 기쁨으로 칠해 준다. 그리고 내가 기대하기를 멈추지 않게 해 준다. 앞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멈추지 않도록.



/
2023년 12월 19일,
소파에 앉아 아랫집의 공사 소음을 들으.



*커버: Image by Hannah Pemberton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14] Happy End of the Yea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