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들

우리에게 주어진 건 스케치북 한 장, 그리고 몽당연필

수험생활이 길어지면

나와의 싸움이 길어진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다독여야 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혼도 적당히 내줘야 하고

잡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더글로리 연진이의 샤우팅

라고 연진이를 소환한다

-잡생각은 됐고요! 해야 할 걸 하세요 홍자까씨!

1차 합격이란 짜릿함을 그저께 맛보고

다시 2차 시험에 돌입한다

수험생활 불합격이 매몰비용이 엄청 큰데

나는 이 수험생활이 나와의 약속을 꼭 해내야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돈도 벌어봤는데 결국 그것이 내가 목표한 것이 아니기에

포기가 정말 쉽더라

내가 결국 합격해 낸다면

나와의 약속도 지키고

나의 밑그림도 완성시키고 싶다

나이 비슷한 친구들은

이미 밑그림 다 그리고 색칠하고 스티커 붙이고 난리 났다

나는 아직 내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했으니

불안하고 긴장되고 조급하다

하지만 속도라는 것이 상대적이고

그림이라는 것에 완성은 언제인지 모르는 거라

인생에서 밑그림만 그리다가 완성이라고 할 수도

색칠까지 다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X 표시를 그어버릴 수도

지워지지 않는 밑그림 위에 자꾸 다른 밑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조차 결국 내 밑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