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떠나보내기 전 3년 동안 엄마는 아빠 곁에서 병시중을 들었다.
부부는 일심동체, 검은 머리 파뿌리라는 말처럼
엄마는 아픈 아빠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사실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내로서의 도리랄까.
하지만 부부도, 엄마도, 사람인지라 고마움을 당연시하면 서럽다.
아빠 곁에서 자신의 삶의 일부를 접어두고 당신 곁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 수고로운 것임을 엄마는 아빠가 알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아빤 당신의 몸이 성치 않으니 평소에 고맙다고 하던 말도 없이 입을 꾹 닫았고
엄마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는 것을 아픈 아빠는 잊어갔고 엄마는 그 서러운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가끔 엄마가 서러움을 폭발할 때면 나를 찾아왔고 나는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맛있는 한 끼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빠에게 엄마의 서러움을 알아달라며 전화를 거니 엄마는 언니한테 마음이 상해서 너에게 갔다고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아빠는 끝까지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나 역시도 엄마가 아빠 옆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좀 더 열심히 아빠 곁에서 병간호를 했으면 했다. 그래서 애꿎은 엄마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고 싫은 소리도 많이 했다.
그렇게 아빠의 보호자로서 엄마의 마음은 낡아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는 갈 길 잃어 요양원에 모시려던 외할머니를 집에 모셔왔다.
나는 그것도 엄마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니까, 엄마니까 당신이 고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엄마의 모습보다는 그저 보호자의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외할머니를 모시고 3년이 지났다.
외할머니도 몸이 성치 않으니 엄마한테 미운말도 하기도 하고 딸과 엄마의 싸움처럼 꽤 자주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뜯었다. 그러면서도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는 말은 모질지만 마음은 착하다며 엄마 옆에서 꼭 나에게 일러주었다.
엄마 말마따나 무수리처럼 그렇게 할머니를 모셨다.
아침엔 할머니 입맛에 맞는 베이커리와 과일주스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엄마 본인은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을 챙겨 먹는다며 나에게 말을 전한다. 엄마 밥도 중요한데 엄마는 스스로 먹고 입고 자는 것들을 낮게 취급한다. 마치 평생의 말버릇처럼
나는 또 눈치 없이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챙겼다. 할머니 먹으라고 택배 보냈어, 건강에 좋대.
엄마는 아빠와 외할머니의 그림자처럼 나에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외할머니가 더 이상 거동이 어려워지자 엄마는 두 손발을 들고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
나는 사실 미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가 모셨으면 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는 외롭게 텔레비전을 보며 늙어갈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시간은?
외할머니와 아빠의 그림자가 걷히자 엄마가 보였다.
아들 딸들을 키우고, 아픈 남편을 병간호하고, 아픈 노모를 돌보고, 자녀의 손주를 돌보는 시간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동안 엄마의 얼굴 주름도 깊어지고 병원 방문도 잦아졌다.
그런데 이제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마치 엄마를 억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자유롭다.
친구들과의 약속, 모임참석, 배우고 싶은 운동, 문화센터 다니기 엄마는 미뤄왔던 것들을 도전하고 있다.
아, 엄마의 인생을 잊었었구나 싶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엄마를 보면서 느낀다.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지 않다.
고마우면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고 감사하면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우리 엄마 많이 고생했다고 옆에서 알아주는 것밖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고생이 정말 많았다, 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