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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일지01. 첫 샘플과의 조우

걱정이 많은 사람이 창업을 할 때 겪는 일

by 만들레


걱정만 하다 죽겠다


걱정은 생존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지만 나는 걱정이 너무 많다. 공장 사장님과 미팅을 하고, 내일 샘플을 만들어주시겠단 말을 듣고도 샘플을 받기까지 걱정들로 흙탕물이 된 머리였다. 따가운 모래 같은 생각들을 가라앉히려고 한참을 노력하느라 잠도 못 잤다. 너무 빨리 공장에 미팅 간 건 아닐까, 샘플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직장에 다니며 원단을 구하러 다닐 수 있을까, 원하는 파우치를 원하는 가격으로 만들 수 있을까..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정오쯤 사장님께서 연락이 오셨다. 부리나케 준비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그래도 이틀 째라고 조금 익숙해진 공장을 가니 사장님과 샘플들이 날 반겼다. 도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과 몇 장의 사진으로 사장님은 내 머릿속에도 흐리게 잡혀있는 무언갈 구현해 내셨다. 내가 한 걱정들이 부끄럽게도, 두 가지 시안을 만들어보셨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만 있던 물건을 꺼내어 만져보니 마음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더 조급해졌다.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말씀하셨다. 공장에 걸린 여러 샘플들을 가리키시며 저 파우치가 그다음 파우치가 되고 그렇게 4번에 걸쳐서 만들어졌다고. 우선 만들면 된다고.


만드는 게 좋아서


사장님이 하루 만에 뚝딱 샘플을 만들어 주신 걸 보고, 나름 만들지 않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으로서 존경심이 들었다. 사장님은 밤에 자려고 하면 이걸 어떻게 만들까 생각이 들어 다음날 또 공장에 나오고, 그렇게 주 7일 매일 같이 나오신다고 한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그 제품을 거래처 분들이 사진을 보내오면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 없다고. 사장님이 사진을 보여주시며 거래처들과 주고받은 문자들 속엔 거래처들의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와 사장님의 빼곡한 진행 상황 전달용 사진들로 가득했다.


토마토 꼭지를 떼자


눈앞의 놓인 것들만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2차 샘플을 만들어야 하는 것. 만들기 위해선 좀 더 편한 촉감의 원단을 찾고 더 제품답도록 만들어줄 부자재들을 찾는 것. 1차 샘플을 일주일 동안 써보며 형태를 보완할 것. 그것뿐이다 단순하게.


토마토 꼭지는 떼서 보관하는 게 더 오래간다고 한다. 토마토 꼭지가 붙어있으면 꼭지 주변으로 곰팡이가 슨다. 꼭지를 떼고 보관하면 싱싱하게

오래간다. 내 머리에 달린 걱정들은 토마토 꼭지다. 톡 떼버리고 싱싱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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