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바다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늘이 어두울 때는 바다도 잿빛이 되는데 그 때문에 멀리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이 흐릿해져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겠는 광경이 펼쳐진다. 살짝 비추어지는 경계는 자세히 봐야 구분이 가고 그마저도 희미하다. 이쯤 되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경계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하늘이 정말 따로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상상으로 경계를 만들어 내어 둘을 따로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바다는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매 순간이 새롭다. 매일 아침 똑같은 커피숍에 가서 내려다보는 똑같은 바다 풍경이 뭐가 새롭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보는 이 바다는 매 순간 다르다. 작년과 다르고, 한 달 전과도 다르고, 어제와도 다르고, 1초 전과도 전혀 다른 바다다.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 한순간도 같은 모양인 때가 없다. 똑같은 크기와 각도와 높이와 속도로 두 번 일렁이는 때가 없다. 단 하나의 파도만 봐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커다란 바다가 어찌 한 순간이라도 같은 모습일 수 있으랴. 바다가 존재해 온 억겁의 세월 동안에도 매 순간 바다는 항상 새로운 모습이었다. 바다가 똑같아 보이는 것은 보는 사람의 상상 속에서나 그럴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상이 반복적이고 변화가 없어 지겹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예를 들어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직장에 출근하는 일상이 똑같아서 지겹다 느껴진다면 정말 과연 그런 걸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오늘의 매 순간순간이 어제와 같은 순간이었을까? 어제 7시와 오늘 7시가 과연 정말 같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탔을 때 어제와 똑같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까? 걸어가는 발걸음 한 걸음걸음이 매번 똑같은 무게와 모습이었을까? 오늘 아침 직장에 들어서는 순간 인사하는 목소리의 크기가 어제와 똑같았을까? 삶에서 진정으로 똑같은 순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을까?
일상이 똑같이 느껴지고 지겹게 느껴진다면 잠시 멈추어 지겹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매 순간을 자세히 살펴볼 일이다. 기억 속의 지난 하루를 떠올려 생각할 게 아니라 일어나는 이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가만히 느껴볼 일이다.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면 뭔가 새롭고 은은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매번 똑같은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은 늘 새롭다.
반대로 어떤 변화를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때도 있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 또한 삶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지금 변화가 두렵다면 이 또한 이미 우리의 삶이 매 순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변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소용없는 것이 삶이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매 순간 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 몸에서 평균 1000억 개 정도의 세포가 매일 죽어나가고 또 새로운 세포가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의 몸은 15년이 지나면 온몸의 세포가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니, 우린 모두 15년마다 새 몸을 받는 셈이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나의 몸조차 매 순간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도대체 변화가 두려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삶은 늘 변한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인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변화하는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변화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삶은 늘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매 순간이 새롭고, 또 늘 변하기 때문에 그 어떤 순간에도 항상 편안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