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어떤 삶의 결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언제나 보이는 건 아닌 것 같은,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닌, 무수히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인생의 주제 같은 것, 그런 삶의 결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의 일생을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오랫동안 지켜보면 그 인생의 주제가 보일 때가 있다. 내 어머니의 삶의 결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6개월이 지나서 문득 내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문자 메시지로 받았다.
"선영아 천천히 조심해서 와. 엄마 돌아가셨다."
김해공항의 기상 악화로 부산으로 가는 연결 편 비행기가 취소되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중이었다. 워싱턴 디씨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너 보고 오라고 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넷째 언니에게 아니라고, 오히려 출발하니까 내가 마음이 편하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그러나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서 본 카카오 단톡 방에는 엄마가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다는 단체 문자가 와 있었다.
인천행 비행기로 변경을 했지만 여섯 시간이나 지나야 출발을 한다고 했다. 그것도 인천공항의 기상 상태에 따라 취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취소된 표를 변경하려고 몰려드는 승객에 피곤해진 항공사 직원이 청주나 다른 공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가 귀찮은 듯 말이 짧아졌다.
티켓 창구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제발 한국 어디든지 가능한 한 빨리 보내달라고 하며 울먹이는 나를 보고 직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이것저것 컴퓨터에 쳐보고 살펴보는 직원을 보면서 나의 절박함이 통한 것 같아 잠시 희망을 가졌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직원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공항 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엄마가 괜찮으실 거라 되뇌며 마음을 다잡고 있던 중에 어머니의 임종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럴 수는 없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와 전화 통화 한통도 안 하고 출발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를 만날 생각에, 일주일이라도 간호를 잘하고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하느라 출발하기 전에 전화 통화 한번 할 생각도 못했다. 어찌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단 말인가. 공항에서 하늘이 무너졌다. 폭포수 같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원망이 살짝 올라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묻혔다. 그때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마음속에 원망이 자리 잡을 자리조차 없었다.
사실 남편이 아니었으면 한국에 하루 일찍 도착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망설이지 말고 바로 출발했더라면...
나와 달리 현실적이고 매사에 계획적인 남편은 전화를 받고 바로 출발하려는 내게 올해 내가 직장에서 병가와 연가를 거의 다 썼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넉 달 전에 어머니께 삼주 정도 다녀오느라 이미 휴가를 많이 쓴 상태였다. 남편은 내게 일주일 정도밖에 없으니 잘 생각해서 시기를 맞추어 가라고 했다. 일주일 안에 돌아가시지 않으시면 임종을 못 보고 그냥 돌아와야 할 수도 있으니 각오를 하라고도 했다. 그 말에 주춤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 말대로 한나절만 더 고민해 보지 않았어야 했다.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원망은 슬픔이 조금씩이지만 서서히 잦아들 즈음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아주 작은 일에도 화가 아주 크게 났다. 아이들 옷을 사는데 남편이 내가 고른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사자고 하면 화가 났다. 내가 아마존으로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주문해 둔 것을 보고 남편이 한 권씩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주문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면 화가 났다. 내가 오후에 장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오전에 장을 보러 가자고 하면 화가 났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남편이 내가 하려는 것을 못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내 생각과 다른 제안을 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일어났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을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고 남편이 화를 내면 나는 그것보다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렇게 변한 아내가 괴로웠을 테다. 불쌍하기도 했을 테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다 해주겠다, 어떻게 해야 나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불쑥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한 며칠 명상을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 것은 나 스스로 이것이 나의 문제이며 나를 돌아봐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캘리포니아 마운트 마도나에서 열린 명상 수련 4일째... 나는 점심으로 나온 야채수프를 먹고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4일 동안 묵언 수행과 명상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나는 마음이 아주 크게 열려있던 상태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지극한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수프 속 채소들의 색깔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데 숟가락을 든 손의 느낌이 좋았다. 입에 닿은 채소 수프의 감촉과 맛이 새롭고 황홀했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가 절에 다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가 절에 다니신 내용에 뭔가 아주 순수한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어머니의 삶의 결이 보였다. 마치 번개가 치듯 순식간에 어머니 인생의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과 그 의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마치 한 주제로 실을 꿰듯이 줄줄이 연결되어 떠오르면서 그 사건들의 의미가 한꺼번에 이해되었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해 어머니가 나에게 남기신 메시지가 이해되었다. 내가 왜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치 컴퓨터에 다량의 데이터가 한꺼번에 다운로드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모든 앎이 한순간에 그리고 한꺼번에 섬광처럼 일어났다.
내 어머니의 삶의 주제는 "순응"이었다.
글이 길어질 듯해서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