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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Oct 28. 2020

나는 지금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늘 가득 하길 바라며

제주에 와서 가족 이외의 다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1년을 보낸 후 어느 날 문득 "소통"이 하고 싶어졌다. 비록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났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을 때는 인터넷 검색을 한다. 그날도 인터넷 카페 사이트를 찾아 두 단어를 검색했다. ‘제주’ 그리고 ‘소통’. 사실 검색을 하면서도 이름에 이 두 단어가 다 들어간 카페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그렇게 이상하리만치 우연하게 인연이 닿게 되는 일이 있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그렇게 나를 이끄는 듯한 우연을 만날 때면 나는 홀린 듯 그 우연의 실마리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하여 이름에 ‘제주’와 ‘소통’이 둘 다 들어가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후 한달 간 지난 1년 동안 안한 소통을 한꺼번에 다 모아서 한 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제 막 시작하는 카페 내의 작은 소모임에도 가입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블로그에 글도 쓰기 시작했고 곧이어 브런치도 시작했으며 며칠 전에는 그 작은 소모임의 오프라인 모임에도 참석 했다. 이 모든 일들을 처음 해보는 나치고는 참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익숙하고 편안하고 늘 그래온 듯 당연하게 말이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이어졌을까 궁금해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펜션과 카페를 시작한 눈웃음이 사랑스러운 부부, 뉴욕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귀포에서 직접 농사지은 귤을 판매 하는, 웃는 모습이 소녀같은 60세 공주님, 프랑스 자수로 고운 물건을 만드는, 다정한 대학생 아들을 둔 엄마, 남의 일을 나의 일처럼 도와주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다는 디지털 노마드 엄마, 대학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는, 또렷한 발성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휘어 잡는 강사님... 이름에 ‘제주’와 ‘소통’이 둘 다 들어가 있는 온라인 카페가 아니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성장하는 즐거움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과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맡는 사람 사는 냄새에 흠뻑 취했다.


이럴 때면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남이 없다면, 그래서 나와 남을 함께 비추어 볼 수 없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무엇인가. 타인은 나를 가장 정확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타인과 어울려 사는 속에서 우리는 나도 소중하고 남도 소중한 줄 알게 된다.  


소모임에서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기로 한 책은 아마 내가 자발적으로는 선택하여 읽지 않았을 책이었다. '백만장자 메신저'라는 제목부터가 제주에서 간소한 삶을 살면서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더 이끌리는 요즘의 내게 그닥 끌리는 제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삶은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음에 깊은 공명을 울리기도 한다. 그날도 그닥 끌리지 않던 그 책에서 발견한 한 구절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러니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닫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늘 마음을 활짝 열어둘 일이다. 삶이 언제 어느 곳에서 내게 인생의 실마리를 던져줄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사랑을 하며 살았던가.

글쓴이 브랜든 버차드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 앞에 섰던 순간, 이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깊은 울림을 느꼈다. "나는 사랑을 하며 살았던가!"


인생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많다. 편하게 살고도 싶고 즐거움도 느끼고 싶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도 싶고, 늘 현재에 깨어서 행복감과 감사함에 충만함을 느끼고 싶고... 원하는 것이 아직도 많이 있다. 예전에는 물질적인 것, 명예로운 것을 원했다면 지금은 정신적인 것을 원하는 것 같다. 지금의 행복감과 충만한 마음을 항상 변치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을 가만히 느낄 수 있다.


불교에서는 내 안의 간절한 바람이 욕망이 되고, 그것이 번뇌를 일으킨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많이 사그라들면서 오히려 정신적인 욕망은 더 커진 듯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간절한 바람과 욕망이 번뇌를 일으킨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늘 현재에 깨어 있어서 행복하고 충만한 마음을 항상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강해질 때면 역설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 사그라들곤 했다. 행복은 마치 예민한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찾을수록 더 멀어지는 탓이다. 찾지 않고 있을 때는 살포시 내게 곁을 내 주지만 내가 찾을 때는 온갖 앙칼을 다 부리며 오히려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당장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게 될까 상상했을 때 내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이 많은 바람과 욕망들이 한방에 다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질문 하나가 내 마음 속을 뚫고 들어와 온갖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도려내고 단 하나의 보물같은 진실 하나만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남겨두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아마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졌던가를 생각하지는 않을 듯 했다.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루었던가를 생각하지도 않을 듯 했다. 심지어 내가 행복했던가를 돌이켜 보지도 않을 것 같다. 늘 현재에 깨어있어 평안했던가마저도 아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는 사랑을 하며 살았던가" 라는 질문 하나만이 떠오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문장을 읽은 그 순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하여 나는 원하는 것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한번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이 항상 평안하기를 바라는 욕망을 내려놓게 되기를, 그리고 그런 내 마음속에 나를 위한 기도대신 다른 사람과 세상을 위한 기도가 가득 차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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