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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Oct 19. 2020

나를 찾는 길은 나를 잃는 것일까?

나답게 살지만 나를 고집하지 않기를 희망하며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어서인지 요즘 주변에서 나를 찾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동안 자식들과 남편, 부모님 등 주변을 챙기다 보니 나를 챙기지 못한 것 같다는 지인들이 많다. 그동안 남을 위한 삶만 살고 정작 자신을 보살피지 못하고 살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운동도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새로운 취미도 찾아 나섰고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도 갈 거고 지금은 자신을 위해 돈도 아끼지 않고 쓴다고 했다.


주변에서만 이런 말을 듣는 게 아니다. 미디어나 산업에서도 나를 찾아라 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넘친다. 갖가지 운동, 다이어트, 여행, 패션, 힐링, 요가 등의 다양한 자기 찾기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그만큼 우리가 그동안 우리 자신의 본질에 멀어진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아무리 추구해도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이 실체가 없는 행복을 이제는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찾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런 메시지를 대할 때 잠시 나는 반대로 가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젠가부터 나를 덜 찾으면서 행복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 40이 될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둔 삶을 살았다. 초점이 아주 자세하고 좁게 맞추어진 삶에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 초점을 통해서 이해되고 해석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업적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듣는 즉시 내가 이룬 또는 이루지 못한 업적이 떠올랐다. 내가 잘 못하겠거나 게을러서 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나를 위한 변명거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해낸 일이 생기면 자랑스러웠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자 다짐했다.


이후 언젠가부터 힘을 빼고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덜 찾게 된 것 같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힘을 빼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 쓰는 에너지가 준 것 같다. 나를 변명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가 줄었다. 내 자랑거리를 찾기 위해 쓰는 에너지도 줄었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생각하는 데 쓰는 에너지도 준 것 같다. 남이 나를 잘 챙겨주기를 바라는 데 쓰는 에너지도 분명 줄었다.


그러고 보니  경우에는 나를  찾으면서  행복해진 듯하다. 어찌 보면 이것은 그동안 내가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의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막내로 자란 나는 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언니들과 다르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은 웬만하면  하고 자랐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때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유학을  때도 경제적 도움 없이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이유로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사실 부모님이나 가족이나 주변 여러 은인들의 도움 없이 완전히 혼자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40세까지 충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아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힘을 빼고 살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일까. 나는 힘을 빼고 살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나를 잊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경우에 나를 찾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나를 잃는 데서 출발하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온통 나 나 나...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던 삶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자 오히려 편안해졌다. 남이 나를 챙겨주지 않아도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죄책감이 생기지 않았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 너그러워졌다. 남과 비교하는 일도 없어졌다. 비교할 내가 희미해지자 남은 그냥 남일뿐이었다. 오히려 남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와 남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니 감사한 일이 많았다. 주변에서도 이타적인 모습을 보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감동스럽고 마음속에 환하게 기쁨이 차 올라오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일하는 게 쉬워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는 게 나에게 이득일까 저렇게 하는 게 나에게 이득일까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줄었다. 일이 바빠도 힘들거나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없으니 그냥 일을 하는 데만 에너지를 썼다. 아니다 싶은 일에는 별 고민 없이 쉽게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하면서 고민이나 괴로움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이 줄었다. 일이 없으면 그냥 편안하게 쉬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변하자 나의 주변도 변했다. 좋은 상사를 만나게 되었고 배울 점이 많은 새 동료가 나타났다. 믿음직한 어시스턴트가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도 한결 더 편안해졌다. 온갖 고민과 쓸데없는 생각이 아주 많이 줄었다.


힘을 빼고 산다는 것이 반드시 나무늘보같이 느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힘을 빼고 살기 시작한 것은 아마 4년 전쯤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회사에서도 책임이 늘어나 일이 많았고 직장을 그만두고 갓 사업을 시작한 남편을 도와야 했고 바쁜 남편을 대신해 어린 아이들을 전담하여 돌보는 것까지 아주 바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때도 괴롭지 않았다. 일 할 때는 일만 하고 쉴 때는 그냥 쉬었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뭐 일이 많고 좋아서 특별히 행복하거나 즐거웠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주에 와서 나무늘보같이 느린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주 행복해졌다. 바쁘게 살던 때가 괴로운 건 아니었지만 행복한 것들을 누리는 여유나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매일매일 여유가 있으니 일상의 작은 행복이 더 자주 그리고 쉽게 보인다. 그리고 요즘은 하고 싶은 일만 하니까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행복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나무늘보인데 요즘 갑자기 글을 참 열심히 쓰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쓴다. 재미가 떨어지거나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만 쓸 생각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고집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고집하는 순간 그렇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다시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나다운 삶이 길을 잃게 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나무늘보같이 느린 생활이 지속되는 동안 충분히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든 이 시간 역시 언젠가는 끝나고 다른 변화가 찾아 올 테다. 나는 그게 언제가 되든, 그리고 앞으로 어떤 다른 삶이 펼쳐지든 지금의 나무늘보같은 나와 내 생활과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아야 겠다 생각한다.


그런 내게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그때가 되어 만약 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 잘 안 되더라도 그런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이 생각마저도 고집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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