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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Oct 19. 2020

힘 빼고 사는 삶의 비밀

힘을 빼고 살기 시작하자 사는 것이 쉬워졌다. 행복이 찾아왔다. 


어느 날 지인이 물었다. 코로나에 남편은 암이고 지금은 수입도 없는데 너는 어찌 그리 편안하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편안해진 건 아니지만 몇 번의 계기를 통해 관점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난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힘을 빼고 살기 시작했다.


힘을 빼고 산다는 것은 삶을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맡긴다는 뜻이다. 늘 뭔가 계획하고 목표해서 살던 것을 멈추고 일어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맡기고 간다는 느낌으로 산다. 뭐 특별히 극복해야 할 것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도 없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쉴 때 쉰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하고 아니면 쉰다. 


예전에는 쉬면 죄책감이 생겼다. 시간을 낭비하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항상 뭔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 할 것만 같았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둔 삶은 늘 효율성을 따졌고 성취를 갈구했다. 돌이켜 보면 미래를 위해 사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이루기도 많이 이루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에는 끝이 없었다.


힘을 빼고 살면서부터 나는 삶의 큰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 노력하지 않는다. 만일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이 또한 길게 보면 좋은 일일 거라 생각하고 크게 낙담하지 않는다. 만약 잘 되는 일이 있으면 그 과정을 기쁘게 즐기지만 항상 잘 될 거라 기대하지도, 또는 거기에만 취해서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놓치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힘을 빼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말 사는 것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많은 일들이 쉽게 풀렸다. 직장에서도 뜻하는 일들이 쉽게 이루어졌고 집에서도 육아가 덜 고민되고 더 즐거워졌다. 안 되는 일이나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들마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최선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나 원하는 방식이 반드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내게 행복한 길을 열어 주는 일이 많아졌다.


힘 주고 살 적에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젓는 삶을 살았다면 힘 빼고 사는 지금 나는 물살을 타고 흐르는 방향으로 유유자적하게 경치를 즐기며 가고 있다. 반드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 상류에만 행복이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물살을 타고 내려간 바다에 더 크고 넓고 깊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 빼고 산 지난 4년간 내게는 내적으로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왔다. 삶은 흘러 흘러 2019년 여름 우리 가족을 제주도에 데려다 놓았다. 그 사이 코로나도 터졌고 우연히 남편의 암을 발견해서 수술도 받았다. 처음 5개월 계획했던 한국 살이가 코로나로 1년이 되었고 남편의 건강 때문에 1년 더 연장되었다. 사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위한 삶이 아닌 현재를 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가족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나무늘보처럼 느린 삶을 살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늘보처럼 느린 삶을 살기 시작하자 예전에는 흘러 넘겼던 작지만 감동적인 일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 살면서 본 아름다운 것들과 느린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과 그 속에서 찾은 행복한 마음을 나누고픈 마음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닐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당신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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