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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늘보 Oct 23. 2020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게 낫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길이 결국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제주는 바람이 좋다. 무더운 여름에는 바람을 만나면 반갑다. 추운 겨울 바람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같은 선선한 가을 날씨에는 강한 바닷바람을 만나면 신이 난다. 제주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해안을 걸을 때면 강한 바람이 내 몸을 관통하며 세포 하나하나를 씻어 주는 느낌이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어지러운 찌꺼기들을 구석구석 찾아내어 씻어 주는 느낌이다. 마음이 체한 사람이 있다면 제주 바람을 맞으러 올 일이다. 제주의 바람은 정화의 힘이 있다. 치유의 힘이 있다.


커피숍에서 집으로 향하는 용담 해안길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강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타박타박 해안을 걷는데 헝클어지는 머리가 얼굴을 타다닥 치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늘 같이 좋은 날씨에는 이렇게 강한 바람이 참 좋지? 마음까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지 않아?"


남편이 말했다.


"Nope. I don't like strong winds. I have to lean into it the whole time while walking." (아니, 나는 강한 바람은 안 좋아. 걸을 때 바람 부는 앞 쪽으로 계속 몸을 기울여야 하거든.)


그러고 보니 남편은 가방을 한 짐 지고 있었다. 랩탑이 두 개나 들어 있는 배낭에 내 천가방까지 자기 배낭 손잡이에 꽁꽁 동여 매고 그 모든 짐을 혼자 지고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홀홀 가벼운 몸으로 세찬 바람을 즐기며 걷고 있던 나와는 달리 무거운 가방을 진 남편이 강한 바람에 몸이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몸을 숙이고 걸어가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내 가방이라도 이리 달라고 했지만 예상대로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It's better for one person to suffer. No need for both of us to suffer."

(한 사람이 고생하는 게 낫지. 둘 다 고생하는 것보다는.)


남편은 종종 말한다.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면 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낫다고. 그래서 산책길이 좀 길어지면 가방은 늘 남편 차지다. 자기는 가방을 하나를 들든 둘을 들든 어차피 불편하긴 마찬가지란다. 대신 너라도 편안하게 산책하는 게 좋지 않냐고.


처음에는 이런 남편의 사고방식이 조금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불편한데 어찌 나만 혼자 편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이 무거우면 나눠 드는 게 낫지 않나 했다. 힘든 일은 나누어야 덜 힘든 게 아닌가 생각했다.


신혼 초에 남편이 내가 설거지를 할 때 태평하게 TV를 보고 앉아 있으면 이해가 안 되었다. 딸이 여럿인 집에서 자란 나는 뭐든 함께 하는 게 익숙했다. 누워서 TV를 보다가도 누군가가 집안일을 시작하면 일어나서 같이 도와줘야지 안 그랬다간 어디선가 발차기가 날아올 수도 있다. 그런 내가 쉬고 있는 남편에게 볼맨 소리를 했을 때 남편은 한 사람이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쉬거나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가 설거지 할 때는 나 보고도 쉬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남편은 한 번도 내게 자기가 설거지를 할 테니 뒤 정리나 청소를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내가 혼자 찔려서 한 적은 꽤 있었지만.


둘 다 불행한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것이 낫다.


남편은 이걸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거나 둘 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상황이라면 절충을 해서 둘 다에게 조금씩 불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사람에게 행복을 다 몰아주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몰아주면 된단다.


"Do not compromise. Take turns." (절충하지 말고 번갈아 해라.)라는 거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절충을 해서 둘 다 만족스럽지 못한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실제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잘 못 적용될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의 원망이 나올 수 있다. 불편한 쪽에서 불만이나 질투의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을 테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상대방이 매번 자기 행복만 추구하면 자칫 내 마음이 좁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내게는 남편이 합리적이라고 하는 이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게 낫다"는 말이 따스한 사랑의 말로 들린다. 남편은 늘 내가 행복한 것이 좋다고 한다. 아마 남편은 자기가 조금 불편해서 내가 편안하게 산책하고 제주의 바람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 편이 자기도 더 행복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조금 불편해서 남편이 행복한 일을 할 수 있을 때 내 마음이 좋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남편이 친구와 며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다녀오라는 마음이 나왔다. 한 사람이라도 육아에서 해방되어 잠시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상황이 안되어서 나는 못 가지만 당신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남편은 또 그런 나를 위해 주말 아침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데리고 가곤 했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말이다.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기도 하다는 마음이 생길 때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물론 항상 이런 마음이 들 수는 없을테다. 하지만 내 경험에는 이런 마음이 들 때 오히려 내가 더 행복했다. 나의 행복을 생각해 주는 남편 덕분에 오늘도 나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자기도 행복한 길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남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이라도 행복한 이 길이 결국 두 사람 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에 감사함이 환하게 차올랐다. 행복한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더해져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계속 가방을 메고 가도록 내버려 뒀다. 계속해서 제주의 세찬 바람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즐기며 마음껏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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