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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Feb 10. 2021

내 맘대로 안돼서 남편

남편도 날씨처럼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남편이 암에 걸렸다고 하니 내 주변 지인들은 남편보다 나에 대한 걱정이 컸다. 혹시라도 남편이 잘 못 되어서 내가 혼자 남을까, 남편을 간호하고 보살피면서 고생 하지나 않을까, 내 마음이 힘들지는 않을까...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픈 남편에 대한 걱정보다 큰 듯했다.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예전에 내 친구의 남편이 오랜 지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친구의 남편보다는 내 친구가 더 걱정이 되었었다. 환자의 고통에는 내 친구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니 환자를 돌보며 살아가는 내 친구의 고충은 가까운 지인인 나라도 알아봐 주면 좋은 일일 테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간병하는 가족의 입장이 되고 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당사자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술 도중 주어진 자극 때문인지 수술 직후 병실에 돌아온 남편은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수술 전에 관장을 한 데다가 도뇨관까지 달고 있는 남편이 화장실에 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남편은 계속 볼 일을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며 괴로워했다. 수술 진통에, 볼 일을 보고 싶지만 못 가는 느낌에, 올라오는 열감에 내내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을 설치는 남편의 곁에서 편안한 자세를 잡아주기 위해 열일 할 때도, 열이 내리지 않아 밤새 찬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줄 때도 남편에 대한 불쌍함이 커질 때는 내가 힘든 줄을 몰랐다. 남편의 고통이 가장 심할 때는 오히려 남편의 미운 점까지도 예뻐 보였을 정도니 이런 나를 보고 변태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그런 내게 정작 힘든 일은 오히려 남편의 몸이 점점 회복하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한가운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기에 나는 가능하면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 반면 남편은 병실 생활이 답답했는지 자꾸 바깥바람을 쐬기를 원했다. 아픈 남편과 언쟁하기 싫어 한동안은 마스크를 쓰고 웬만하면 하자는 대로 해 주었지만 마음에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어느 날 병실을 나서는 나의 마음이 갑자기 아주 불편해졌다. 같은 병원의 다른 병동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데 아픈 남편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사람들이 많은 로비를 지나가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아픈 남편과 병실에서 언쟁을 벌였다. 고집 센 남편보다 더 센 고집을 피워서 결국 가능하면 병실에 머무르고 사람이 별로 없는 늦은 저녁 시간에만 바깥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픈 남편을 간병하는 게 힘든 게 아니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남편이 힘든 거였다.


남편과 산 세월이 15년이 넘었다. 남편이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것쯤은 이미 깨친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남편이 아프고부터는 남편의 고집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잘못될까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와 같은 마음이 되었던 걸까. 어느 날 남편의 행동을 살피면서 이 행동이 몸에 좋을까 좋지 않을까를 마음속으로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따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마음이다 보니 고집 센 남편과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었으리라.


처음 식이요법을 시작하자고 남편을 설득할 때는 007 작전이 부럽지 않은 작전을 세웠더랬다. 내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다 보니 함께 암 치료법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남편 스스로 식이요법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가능한 내 입은 닫는 작전을 펼쳤다. 결국 남편이 스스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적어도 남편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식이요법을 시작은 했지만 처음에 갑작스럽게 바뀐 식생활에 적응을 못한 남편이 자꾸 피자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할 때는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답답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힘을 빼고 살면서부터 내게 생긴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잘 불편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통제 못하는 일의 경우에는 바깥일이 소란스러워도 내 마음 속은 웬만하면 편안한 편이다. 남편의 수술 날짜가 다가왔을 때 한국에서 의사 파업이 시작해서 주변에서 걱정이 클 때도, 수술 일 전후로 세 개의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를 상륙해서 뉴스에서 소란스러울 때에도, 코로나 2차 유행이 시작하면서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에서마저 확진자가 나와서 온 병원이 술렁거릴 때에도 내 마음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수술이 연기된다면 연기된 날짜에 수술을 받을 것이고, 태풍 때문에 제주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일정에 문제가 생길 듯하면 하루 일찍 출발하면 될 것이고,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면 더 방역을 철저히 하실 테니 우리만 조심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어찌할  없는 일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좋아 보이는 일이 생겨도 걱정을 해서   일거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걱정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일은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다. 결국 남편의 수술 역시 계획했던 수순대로  진행이 되었다. 의사 파업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태풍 하이선과 태풍 노을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사이에 코로나 확진자 발발로 병원 곳곳에 방역팀이   없이 들락날락 거리는 중에도  하나의 차질도 없이 수술이 무사히 이루어졌다. 결국 편안했던  마음처럼 바깥 일도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는 오히려 더 철저한 자기 검열이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해야만 하늘도 나를 도울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마치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처럼 말이다. 내가 최선을 다 하지 않아서 일을 그르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나의 경우엔 진인사를 다 해야지만 대천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나 보다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나에게 남편이야말로 최대의 도전거리 인지도 모르겠다. 의사 파업이나 날씨처럼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엔 조금 아쉽고, 그렇다고 해서 실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에 속하는 것도 아닌 이 고집쟁이 남편이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난제 인지도 모르겠다. 내 말은 안 듣고 남의 말만 잘 듣는다고 남편이란 말도 있다하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났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은 내 맘대로 안된다 한탄하시던 두 분 모습이 떠올랐다. 외국인 사위와 결혼해서 안정적인 직장도 그만두고 미국에서 살겠다 했을 때 몸져누우셨던 어머니와 잠시 말을 잃으셨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온갖 회유와 설득과 비행기표를 숨기는 협박까지 시도하셨다가도 결국에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하시며 내 뜻을 받아주셨던 부모님 생각이 났다. 훗날 어머니는 날더러 태어날 때 딸로 태어난 것 빼고는 자라면서 부모님 실망을 시킨 적이 없더니 결혼을 하면서 크게 한번 날벼락을 안겨 주려고 그랬구나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천하의 불효막심 고집불통 구제불능 옹고집 딸내미였지 않는가. 그때는 내 마음마저도 내 맘대로 바꿀 수가 없어서 괴로웠었지 않았던가.


심리학에서는 날씨처럼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일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일컬어 통제력 착각 (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마음을 내 맘대로 바꾸려 한 나야말로 세상 가장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고집불통 남편이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내 맘대로 안돼서 남편이란 말이 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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