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보선생 Feb 01. 2021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운 순간

암 진단을 받은 날 내 남편의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 어떤 사람의 가치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 보일 때가 있다. 살면서 남편의 그런 빛나는 모습을 여러 번 만났다. 햇살 가득한 날 도로변 꽃화분이 길게 늘어선 알록달록한 제주 아라동의 큰 길가에서도 남편의 찬란하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모습을 보았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 그 맑은 눈에서 나오던 평화로운 광채와 깊은 목소리에서 나오던 진실된 사랑의 대화를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투는 날이 있더라도, 아마 하늘도 꺾지 못할 그 똥고집에 내 가슴이 다시 답답해지는 때가 오더라도 우리 둘 사이에는 언제나 그 눈부신 날의 하나 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날 가슴을 가득 채웠던 감탄과 사랑의 오묘한 섞임이 자아내던 그 충만한 감동은 잊혀지지 않고 영원히 나의 세포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유난히 화창한 날씨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셨던 그 날.  진단을 받았지만 아직 전이 여부를 알지 못해 추가 검사를 예약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한번 눈물이 터지자 꾹꾹 눌러 두었던 남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한꺼번에 와락 쏟아져 나왔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날뛰며 감정도 함께 날뛰기 시작했다. 온통 후회되는 순간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그 수많은 기억들이 다 떠오르기도 전에 성급한 내 마음은 이미 암의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스트레스다. 새 사업을 시작하느라 밤잠을 못 자가며 일한다고 받았던 스트레스, 이사하면서 팔지 않고 세를 준 집을 관리하느라 받았던 스트레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타고난 예민함에서 오는 스트레스... 워낙 철저하고 꼼꼼한 남편에게 집을 사고 아이들을 낳고 난 후부터는 온통 책임감과 스트레스만 안겨 준 것 같았다. 별일 아닌 일에 왜 그리 스트레스를 받으냐고 나무랐던 내가 준 스트레스도 분명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 낳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아이가 있어서 힘든 것이 낫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낳자고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는 혼혈아인 아이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두 나라 사이에서 살면서 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둘째를 낳자고 했다. 나이 많은 부모인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혼자 남겨진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아내를 위해 큰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위해 둘째를 낳은 남편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받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깔끔하고 매사 계획적인 남편에게는 자유분방한 어린 아이들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이 아주 많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어린 아이들 때문에 아내와 데이트도 한번 나가기가 쉽지 않아진 남편이 언젠가 사는 낙이 아예 없어진 것 같다고도 했었다. 그뿐인가. 처음에는 그런 남편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던 나 때문에도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쌍했던 남편이 이제 큰 병까지 걸리고 나니 마음이 쓰라리게 아프고 한없이 미안했다. 이 대책 없는 아내가 아이를 고집해서 남편에게 책임과 스트레스만 주고 행복과 즐거움은 앗아간 셈이 되었다. 그 모든 스트레스가 모여서 "나 힘들어!"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온몸으로 "나 좀 봐줘!"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미안함에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밤하늘의 별도 따다 주고 싶다는 심정이 이런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남편은 나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남편이 우는 나를 꼭 껴안으며 위로했다. 걱정마라. 만약의 경우 내가 잘못되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다. 너는 강하고 현명하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조금 걱정이지만 아이들도 점점 자라 곧 적응을 하고 독립적이 될 것이며 도울 것이다... 우리가 이미 제주에 와 있어서 다행이라며 만약 자기가 잘못되면 이대로 여기서 한국의 가족들 가까이에서 어울려 살라고도 했다. 생명 보험을 들어 놓았으니 한국에서 원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생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고도 했다. 남편은 혹시라도 자기가 잘못될 경우 남아 있는 우리가 살아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암에 걸린 불쌍한 남편을, 남편은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르는 나를.


남편과 내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뭉클한 따듯함이 가슴을 채웠다. 남편의 나를 위하는 마음과 나의 남편을 위하는 마음이 만나 따듯한 사랑의 꽃으로 피어났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피어오를 때 행복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길 때 나의 행복도 커지는 것 같다. 마치 엄마가 순수한 사랑의 마음으로 아이의 행복만을 바라면서 행복해지는 때처럼 말이다. 물론 항상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다가 나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져서 나와 남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때, 그런 때에는 넓어진 마음만큼이나 커진 그 공간에 충만한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잘은 몰라도 이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바로 이 느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잠시 후 남편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년간 제주에서 정말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자기는 항상 삶을 최대한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늘 해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다 아름답고 여유로운 제주에서의 1년이라는 시간까지 선물을 받았으니 어쩌면 큰 축복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앞으로 자기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주에서의 행복했던 지난 1년이면 자기 생의 마무리로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거다.


제주에서의 휴식 같은 1년이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의미 있는 일이었는지는 나도 몰랐다. 누군가에게는 제주에서 사는 것이 어쩌면 큰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은퇴를 해서 시간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해야 하는 일 없이 1년을 여유 있게 사는 것이 큰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을만치 크고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었나 보다. 작아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아주 큰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소박한 변화로도 남편에게 크나큰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었구나.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고 매일매일이 보너스인 삶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눈에서 반짝이던 그 광채를 잊지 못한다. 한 점의 거짓도 일말의 두려움도 후회의 흔적조차도 없던 투명하게 반짝이던 그 눈을 통해 나는 그의 맑고 깨끗한 영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아이 친구들이 장난 삼아 대머리 빡빡머리라 불렀던 그 동그란 감자모양 머리 뒤로 희미한 후광마저 비치는 듯했다.


그때까지 흐물흐물 거리던 내 마음이 순간 갑자기 단단해졌다. 보석 같은 이 남자를 꼭 지켜야 한다. 나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별처럼 빛나는 마음을 가진 이 남자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 상황을 반드시 헤쳐나갈 것이다. 그 순간 커다란 용기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어떤 일이든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항상 사랑하고 감사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로 다가왔다.


동시에 남편에 대해 가졌던 자잘한 불평들을 반성하는 마음도 올라왔다. 하나도 중하지 않은 일에 일희 일비 했던 마음을 진심으로 반성했다. 어찌나 진심이었던지 신이 계신다면 내 반성문을 꼭 받아 주실 듯했다. 내 남편을 살려 주실 것 같았다. 그 과정이 행여 고난스럽더라도 결국은 살려 주시지 않을까. 이토록 진실된 반성문을 결국엔 받아 주시지 않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아라동 꽃길이 사랑으로 가득 찼다. 익숙한 듯 은은한 평화로움이 마음을 조용히 채웠다. 손을 꼭 잡고 잠시 말없이 함께 길을 걷던 우리 부부의 마음에 완전한 평화와 사랑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 아라동 꽃길을 함께 걸었다. 사랑 속에서 하나가 되어 꽃길을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은 대천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